아버지를 찾아나선 아들의 이야기

중앙일보

입력

아이야, 고등학생인 네 사촌 형이 오토바이를 사겠다고 해서 그 집안에 북새통이 벌어진 모양이더구나. 좀 더 나이가 들어서 타면 어떻겠느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그 아이는 "남들이 모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때에 같이 타는 건 멋이 없으니, 다른 아이들보다 먼저 오토바이를 타고 싶다"고 맞섰다고 하는구나.

그 아이의 아버지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는 분이니까 오토바이가 위험한 것을 잘 아시는 분이지. 아직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게 생각보다 더 빠른 나이에 오토바이는 더 위험하기 때문에 말리시는 것이야. 그 집안의 이야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옛날 이야기가 있어.

포플러 나무 이야기야. 시골 길을 가다 보면, 개울물이 흐르는 길가에 가지를 하늘 위로 쭈욱 뻗어 올리고 마치 벌 서듯, 혹은 공손히 기도 올리듯 서 있는 아름다운 나무 말이야. 미루나무라고도 부르는 포플러 나무 말이다. 이 포플러 나무에 얽혀 전해오는 슬픈 이야기가 있단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

태양신 헬리오스가 있었어. 그 분이 땅 위에 내려와 머무르는 동안 아들이 하나 생겼지. 그러나 헬리오스는 하늘로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이 누구인지도 모르게 됐단다. 그 아들은 파에톤이라는 이름을 갖고 건장하게 컸는데, 그 아이는 열 여섯의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인 태양신 헬리오스를 찾아 떠난단다.

천신만고 끝에 태양궁을 찾아온 파에톤을 반가워 한 아버지 헬리오스는 열 여섯 청년인 아들에게 원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겠다고 약속을 하지. 그때 파에톤은 아버지가 이끄는 태양마차를 끌어보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단다. 태양마차는 워낙 사나운 속도로 달리는 데다 온 땅을 밝게 비춰야 하는 뜨거운 태양을 몰고 다니기 때문에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마차였어. 그래서 신 중의 최고 신이라 하는 제우스조차도 태양마차는 끌어본 적이 없지.

태양마차는 정말 위험하다며 아무리 말렸지만 파에톤은 막무가내였어.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지. 결국 헬리오스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말게 돼. 파에톤은 그 위험한 태양마차를 이끌고 하늘을 오르게 된단다. 그러나 태양마차는 파에톤이 오르자마자부터 광란의 질주를 하게 됐어. 높이 치솟아 오르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치기도 했지. 태양마차가 땅 가까이 가면 그 열 때문에 땅 위의 모든 것은 불에 타 올랐어.

차츰 온 땅에 불길이 번졌고, 신들은 파에톤을 태양마차로부터 끌어내려야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지. 마침내 제우스 신은 파에톤을 향해 번개를 쏘게 되고, 파에톤은 땅 위에 떨어져 죽게 된단다.

파에톤에게는 네 명의 누이가 있었어. 파에톤의 죽음을 슬퍼한 누이들은 파에톤이 떨어져 죽은 개울가 옆에 서서 파에톤의 죽음을 애도했단다. 개울가에 서서 꼬박 나흘 낮밤을 하늘 높이 두팔을 치켜 들고 지새는 동안 네 명의 자매는 모두 나무로 변했어. 마치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 굳어버린 것이지. 그게 바로 지금의 포플러 나무라는 이야기야.

파에톤 한 명이 벌인 광란의 폭주는 마침내 네 명의 누이를 평생 하늘 높이 두 손을 치켜 들고 기도하게 만들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가슴을 찢어지듯 아프게 한 셈이야. 아이야, 오토바이를 사주지 않으려는 네 사촌 형의 아버지의 아파 할 마음이 바로 그 헬리오스의 마음과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아서 안타깝구나.

마침 파에톤의 이야기를 포함해 아버지를 찾아가는 아들의 옛 이야기를 모은 책,〈아버지를 찾아서〉(정하섭 글, 고광삼 그림, 창작과비평사 펴냄)
가 나왔어. 이 책에도 지금 이야기한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의 이야기가 나오더구나. 포플러 나무 이야기도 짤막히 나와 있더구나.

이 책은 '이 세상 첫 이야기'라는 시리즈의 네 번째 책으로 나온 거야. 이 시리즈는 상상력의 보물창고인 신화의 세계를 너희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쓰는 기획이거든. 앞으로 두 권이 더 기획돼 있는 모양인지, 모두 6권까지 나올 계획이라고 하는구나.

〈아버지를 찾아서〉는 아버지를 찾아나선 아들이 나오는 신화를 모은 것이지. 그리스 신화를 비롯해 북아메리카 인디언, 아일랜드 등의 지역에서 전해내려오는 신화 다섯 편을 그림과 함께 담았더라. 특히 재미있는 것은 옛날 이야기를 어린 아이에게 들려주는 듯한 대화체 문장으로 쓰여진 거야. 가만히 소리내어 읽다보면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야기해주는 듯 따뜻한 느낌으로 읽을 수 있겠어.

신화는 오래 전 우리 조상들이 지어내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날까지 살아 있는 이야기를 말하지. 신화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생명력을 갖고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느낌을 남길 수 있는 것은 변치 않을 삶의 알맹이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야. 이를테면 파에톤과 그의 아버지 헬리오스의 이야기는 지금 오토바이에 올라앉아 무한 폭주에 몸을 내맡기고 싶은 사춘기 아이와 그 아버지의 이야기에 비해 다를 게 없잖아. 태양마차 대신에 오토바이가 등장하는 것 뿐이겠지.

아마 지금 우리에게 알려진 신화는 애초에 우리 조상들이 지어낸 신화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거야. 그 많은 신화 중에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신화들은 우리 삶의 알갱이들을 재미있고도 올바르게 담고 있는 것들일 거야. 지금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신화는 그래서 너희들이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먼저 읽어두어야 할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