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西紀二千十二年三月八日復舊上樑(서기 2012년 3월 8일 복구 상량)’.
한복을 차려 입은 서예가 소헌(紹軒) 정도준(64) 씨가 단정한 해서(楷書)로 써 내려갔다. 5일 오후 서울 숭례문 복구현장, 바닥에 누운 소나무 기둥에 걸터앉아서다. 8일 상량식에 올라갈 뜬창방에 먹글씨를 휘호(揮毫)하는 행사였다. 상량식이란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 뜬창방은 기둥이 쓰러지지 않도록 기둥과 기둥을 연결하는 널찍한 받침 재료다.
정씨는 이날 휘호를 마치고 새로 쓴 숭례문 상량문(上樑文)도 공개했다. 10m 길이 한지에 2500여 자의 한글을 정자체로 적었다. 제목 ‘숭례문 복구 상량문’은 훈민정음 반포 당시 서체인 판본체로 썼다. 숭례문을 복원하게 된 경위와 내역, 관계자 명단 및 축원 등을 담았다. 건국대 성태용 교수가 짓고 소설가 김훈씨가 감수했다.
이미 경복궁·덕수궁 등 궁궐 복원 때마다 필요한 글을 써 왔던 정씨는 숭례문 상량문에 대한 특별한 소감을 밝혔다. “기존 복원은 일제에 의해 말살된 민족정신을 복원한다는 의미가 컸지만 이번 복원은 우리 시대의 부주의에 의해 생긴 일이기에 작업 과정 내내 마음이 아팠다”며 “숭례문이 제 몸을 불태움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번 상량문은 다섯 번째다. 조선 태조 때 창건에 이어 세조·성종 때, 1962년의 공사 때 각각 썼다. 당시의 글귀는 양진니·권창륜 씨 등 네 명의 서예가가 각각 나눠 썼다. 새 상량문은 기존 상량문들과 함께 함에 넣어져 봉인된 뒤 뜬창방에 파둔 홈 속에 들어간다. 숭례문 복원에 대한 일종의 타임캡슐인 셈이다. 8일 오후 3시 진행되는 상량식에서다. 문화재청은 올 연말까지 숭례문 복구 공사를 완료할 방침이다. 국보 1호 숭례문은 2008년 2월 한 노인의 방화로 소실됐었다.
강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