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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찾은 김정은 "적들과 총부리 맞댄 만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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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일 판문점을 시찰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70여m 떨어진 판문각에서 쌍안경으로 남측 지역을 살펴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북한 김정은의 동선(動線)이 심상치 않다. 북한 최고사령관(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위를 거머쥔 그는 지난 3일 판문점을 방문해 한 시간가량 머물렀다. 전날인 2일엔 평양 인근의 전략로켓사령부를 찾았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유예를 골자로 하는 북·미 3차 고위급회담 결과를 동시에 발표(지난달 29일)한 지 사흘 만이다.

 북·미 대화 기조와는 반대로 대남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는 듯한 행보다. 단순히 ‘초도순시’ 차원에서 현지지도를 나갔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특히 그가 지난달 24일 연평도 포격도발(2010년 11월)을 감행한 4군단 방문에 이어 판문점을 찾은 데 우리 당국은 주목하고 있다. 김정일 사망 직전 북한 최고지도부의 전방지역 방문은 비공개리에 이뤄졌던 점에 비춰 이번 방문은 이례적이다.

 우선 내부 결속 강화용이란 분석이 나온다. 외부의 위협과 응전을 강조함으로써 구심력을 발동시키자는 내부 정치전술이라는 뜻이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북한은 전통적으로 대미·대남 긴장고조를 통해 지도자의 통치력을 강화해 왔다”며 “4월 권력구조 개편(당대표자회)을 앞두고 남북 대치의 상징인 판문점 방문을 통해 대남 경계심을 높이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민감하게 여기는 한·미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연습기간에 남북 대치 현장과 대남 공격 첨단 무기시설을 돌아봄으로써 대내적인 결집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판문점에서 “적들과 항시적으로 총부리를 맞댄 만큼 언제나 최대의 격동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예년에 비해 키리졸브 연습에 대한 비난 횟수를 50% 이상 늘린 것도, 새 지도자가 긴장의 현장에 나선 것도 모두 강력한 상징조작의 일환인 셈이다.

 북·미 고위급 회담에 이은 실무접촉을 앞두고 기선 제압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북한이 UEP 유예를 합의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과 유예 방식,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 등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적잖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협상을 보아가며 자신들의 뜻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판이 깨질 수 있다’고 시위를 했다는 것이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과 미국은 북·미 회담에 따른 후속 실무회담을 놓고 어떤 사안을 먼저 다룰 것이냐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라면서 “만약 후속 회담이 북한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언제든 미사일 발사 유예 합의사항을 철회하고 도발이 가능하다는 압박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촉구하는 행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정일은 생전 “우리 시대에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김정은이 유훈통치를 하고 있는 만큼 ‘전쟁에는 전쟁, 대화에는 대화’라고 주장해온 선대(先代)의 입장을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란 것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김정일·김정은에 대한 우리 군 부대의 전투구호에 대해 반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일 최고사령부 대변인이 ‘무차별적인 성전(聖戰)’을 주장한 데 이어, 3일엔 국방위 정책국이 비방 기자회견을 했고, 4일엔 평양에서 15만 명의 군인과 주민이 모여 대남 규탄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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