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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의료 비즈니스' 움튼다

중앙일보

입력

의사면허번호 58789,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레지던트 4년차 이재성씨(31).여느때 같으면 그는 다른 전공의들과 함께 파업현장에서 대정부투쟁을 벌이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국내 의료시장을 흔들어놓을지도 모를 새로운 사업에 분주하다.

그는 올초 뜻이 맞는 동지들을 규합,말레이시아에 있는 월드케어 아시아 총괄담당을 찾았다.그리고 지난 4월 결국 월드케어 본사와 각 7억5천만원씩 투자,자본금 15억원의 국내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월드케어는 미국 보스톤에 본사를 두고 세계 16개국에서 원격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다국적 기업.1992년 하버드대학병원에서 분사,현재 존스홉킨스대병원·듀크대병원·클리블랜드 클리닉 등 미국의 저명한 의료기관이 대주주이며,이미 15개국에 합작회사를 두고 있다.

새로운 의료비즈니스가 꿈틀거리고 있다.국민의 건강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인터넷·국제화 등 새로운 의료환경이 펼쳐지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의료 산업이 창출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뉴비즈니스는 현행 의료보험제도와 국내 병원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파고 들고 있는 것이 특징.

예컨대 월드케어 사업은 국내 환자를 미국의 권위있는 병원 의사에게 진찰·치료받게 해주는 서비스다.일종의 국내 의료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족을 충족시키는 상품이다.

이재성대표는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주의적 성격의 우리 의료는 병원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환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성민병원 안병문원장도 비슷한 상품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그는 미국 아웃리치사의 관계자를 만나기 위해 지난 13일 출국했다.

아웃리치사는 미국의 유명한 암치료기관인 MD앤더슨병원의 대외사업을 맡고 있는 회사.안원장은 최근 국내 암환자를 미국의 암치료기관에 연계해주는 사업을 위해 암메드코리아를 차렸다.

의료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을 파고 든 보험상품들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대부분의 보험회사들이 개발한 암보험과 같은 건강보험은 이젠 옛말.본인부담률이 높은 현행 의료보험의 맹점을 파고든 보충의료보험이 등장,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이다.

삼성화재보험이 지난해 9월에 내놓은 삼성의료보장보험은 1년새 가입자 2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이 보험은 통원치료시 본인부담금의 70%,입원할 때는 전액을 보상해 주고 있다.

LG화재보험도 비슷한 개념의 새천년의료건강보험을 선보이는 등 보충의료보험에 대한 보험회사 상품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화의 기류를 타고 국내 의료기관을 세계 시장에 진출시키려는 의료비즈니스도 눈에 띠고 있다.

(주)메디코리아를 설립한 나라한의원 김석원장은 지난달 말 중국 북경의 대형병원 관계자들과 합작 조인식을 가졌다.중국측에서 부지와 건물을,한국측에선 의료설비 및 비만치료시스템과 인력을 제공,내년 1월 개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합작병원은 1천5백병상의 수도소아과병원,1천2백병상의 매탄병원 등 중국의 내노라하는 5개 중대형병원.

김석대표는 “내년까지 중국 전역에 한방다이어트를 주제로 한 합작병원을 10개 이상 늘리고,이어 미국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성형외과의사인 심영기원장은 지난 12일 중국 대련에서 해군병원과 합작,성형외과를 개원했고,치과의사이며 메디소프트 대표이사인 박인출원장은 미국·중국·일본·동남아시아에 합작치과병원 사업을 추진하는 등 우리나라 의료수출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경희대 병원경영학과 정기택교수는 “WTO(세계무역기구)가입으로 이미 세계시장은 열려 있다.앞으로 우리 의료는 자유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의료시장이 급변하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정부 지원과 인프라는 크게 부족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박인출대표는 “그동안 우리 의료는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정책부재,의료경영에 대한 무관심으로 가장 낙후된 산업이 됐다.국제화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도 의료를 인술이나 복지개념을 뛰어넘어 산업으로 인식,경쟁력을 갖추는 방안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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