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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후 2000년 26석 줄였다가 2004년 299석 복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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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의 첫 ‘날치기’는 선거법이었다. 88년 3월 1일, 13대 총선을 앞둔 국회는 의석수를 276명에서 299명으로 늘리는 선거법을 통과시킨다. 다수당이었던 민정당이 새벽 2시10분 기습처리한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득표수 1, 2위 2명을 뽑는 중선거구제가 1명만 선출하는 소선구제로 바뀐 것도 이때다.

 여야는 선거법의 손익계산을 따지며 긴 시간을 협상했으나, 합의와 파기를 반복했을 뿐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정치권 스스로 결론을 짓지 못하고, 선관위의 제안을 자기 편한 방식으로 받아 300석을 만든 2012년과 그때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렇게 민주화 이후 첫 날치기는 국회의 밥그릇(의석수)을 23석이나 늘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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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태우-김영삼 정부까지 견고하게 지켜지던 299석을 무너뜨린 건 97년 외환위기였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획정위원회’는 인구 수를 토대로 26~31석을 줄이는 권고안을 국회의장에게 보고했다. 1인2표제(후보자와 정당에 각각 투표)와 맞물려 의석수는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여야였던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또 합의와 파기를 반복했고, 캐스팅보트를 쥐었던 자민련은 왔다갔다했다. 그러다 여론의 질타에 못 이겨 26석을 줄이는 안을 통과시켰다.

 줄어든 밥그릇은 바로 다음 총선에서 원상복귀됐다. 2004년 여야는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모두 늘리며 299석을 회복시켰다. “외환위기로 고통받는 국민과 아픔을 나누겠다”는 국회의 다짐은 단명했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 의석수를 줄이는 데는 국가부도 사태에 버금가는 위기가 닥쳐야 한다”는 자조(自嘲)가 나올 정도다.

 국회가 27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19대 총선 선거구 획정안은 경기 파주와 강원 원주 지역구를 파주 갑·을과 원주 갑·을로 나누어 1석씩 늘리고, 세종특별자치시에는 독립 선거구를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다른 지역구의 동(洞)을 옆 지역구로 떼다 붙이는 식’으로 조정된 7개 선거구다. 경기 용인의 경우 기흥구(區)의 동백동과 마북동이 옆 지역구인 처인구로 편입되고, 수지구 상현2동을 떼다가 기흥구로 붙였다. 또 용인 처인·기흥·수지 지역구를 각각 용인 갑·을·병으로 이름을 변경하기로 했다. 충남 천안을에서는 쌍용2동이 천안갑으로 합쳐진다. 경기 수원은 권선에서 서둔동을 떼서 팔달로 붙이고, 장안·권선·팔달·영통이 각각 수원 갑·을·병·정 지역구로 이름이 바뀐다. 또 경기 이천-여주는 이천을 단독 선거구로 하고 여주를 인근 양평-가평과 통합시켰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조차 “사상 최악의 게리멘더링(gerrymandering, 특정 정당·후보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나누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야의 이런 합의는 “지역구 간 인구비는 3대 1을 넘어선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맞추면서, 현역 의원의 지역구는 최대한 유지하려다 보니 생겨났다.

 헌법이 강조하는 ‘표의 등가성’도 논란거리다. 용인은 인구가 90만 명이 넘지만 의석 수는 3석, 76만 명의 안산은 4석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미국의 경우 10년에 한 번씩, 인구 변화에 맞춰 선거구를 정하고, 그 중간에는 정치권이 개입하기 힘든 구조”라며 “우리의 경우 인구 상·하한선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권이 자기 이익에 따라 끼웠다 뺐다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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