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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지균 감독 신작 '청춘' 화제

중앙일보

입력

"청춘, 이는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우보 민태원(1894~1935)의 수필 '청춘예찬' 의 첫 구절이다.밝음.희망.진취 등의 등가물인 청춘. 반면 그 속엔 엄청난 고통이 수반한다.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빚어지는 방황 말이다.

한국형 멜로영화를 천착해온 곽지균(46) 감독의 '청춘' (14일 개봉)은 두마리 토끼를 노린다.
이른바 청춘의 혼돈과 희망을 꿰뚫으려 한다.

'깊은 슬픔' 이후 3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곽감독 스스로 밝힌 대목이다.

그렇다면 청춘의 가장 큰 고통은□ 사회인가, 인류인가, 아니면 대학진학인가.곽감독은 섹스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모든 무거운 주제를 다 던져버리고 성에, 그것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탐닉하는 젊은이를 통해 청춘의 아픔과 성숙을 그리고 있다.

386세대를 울렸던 곽감독의 데뷔작 '겨울나그네' (1986)를 떠올리면 곤란하다.기지촌도 없고 사랑의 순수한 고갱이도 없다.

단적으로 말하면 영혼의 교감이 사상된 육체만 노출된다.'그후로도 오랫동안' '젊은날의 초상' 등 일련의 작품에서 리얼리스트의 면모를 보여줬던 곽감독이 어느날 갑자기 모더니스트로 훌쩍 뛰어버린 양상이다.

영화는 고3부터 대학 초년까지의 짧은 기간을 다룬다.

여자 친구가 자살하자 사랑을 불신하고 육체에만 몰입하는 자효(김래원)와 고3 때 만난 여선생님(진희경)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연모 때문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수인(김정현)의 갈등과 교감이 중심축이다.

여기에 자효의 방황을 돌려놓는 간호사 남옥으로 n세대 스타 배두나가 나온다.

'노랑머리' 등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와 다른 점은 곽감독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영상이다.

'노랑머리' 의 다소 거칠고 조야한 화면 대신 하동 들길.아흔아홉칸 한옥.섬진강변.주왕산 등을 계절별로 훑으며 아름다운 풍경을 최대한 낚아챘다.

한폭의 수채화 같은 배경과 분출하는 젊음의 욕망 사이에서 일종의 위화감이 들 정도. 앞날에 대한 비전 없이 성애(性愛)에서 순간의 탈출구를 찾는 주인공들과 때론 불협화음을 이룬다.분명한 복고풍이다.

"도회적 감각을 따라가기엔 나와 편차가 너무 크다" 는 게 곽감독의 설명. 대신 지나치다 싶을 만큼 노출신이 많은데도 영화 전체가 너저분하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됐다는 미덕이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살다 막바지에 남옥에게 마음을 여는 자효의 각성은 다소 우발적이다.삶이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영화평론가 전찬일씨는 "사랑을 예쁘고 세련되게 꾸미려는 최근 영화와 달리 솔직 담백한 언어와 화면에 공감이 간다" 며 "신인 배우들의 혈기 있는 연기도 좋았다" 고 말했다.

[Note]
2000년의 청춘인지, 1960년대의 청춘인지…. 때론 혼란스럽다. 역사.사회적 배경을 걷어낸 까닭일까. 40대 이상의 중년층엔 보리밭 정서를 환기시키고, 10~20대에겐 '섹스 제일주의'란 세태를 자극한다. 40대 중반을 넘어선 곽감독의 시선이 애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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