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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집중 두 집은 우리 창문 쓰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파트 베란다나 창문 문틀을 바꿀 때 대부분 ‘샷시’를 바꾼다고 한다. 발음에서부터 금속성 느낌이 나는 이 ‘샷시’업에 ‘창호’라는 부드러운 우리말로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기업이 있다. 덕분에 ‘창호’는 ‘샷시’보다 고급스런 제품에 쓰이는 말처럼 됐으니 국어 학자들도 고마워할 일이다. 하지만 처음에는 ‘창호지 만드는 회사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생소한 말이었다.
국내 창문·문틀 업계의 선두 주자인 이건창호는 시장에서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건설업 중 납품 부분에 불과했던 새시업종을 독립적인 한 업종으로 만든 것 자체가 이건창호의 업적이다. 그 전까지는 아파트나 주택 공사에 타일과 벽지가 들어가듯 창문도 공급되는 부품에 불과했다. 간혹 입주한 주민들이 베란다에 새시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경우에는 대부분 동네 ‘샷시집’이 작업을 한다. 하지만 88년 이건창호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시스템 창호’라는 개념이 생겼고, 동네 철물소가 아닌 자체 브랜드로 대리점을 통한 창호공사가 시작됐다.

숫자를 통해 확인해 보자. 우리 나라 시스템 창호 시장 중 65%는 이건창호의 창문을 쓰고 있다. 초고층 고급 아파트의 경우 90% 이상이 이건창호 제품으로 채워져 있다. 최근에는 영종도 신공항의 본청사 외장(curtain wall)공사도 이건창호가 직접 설계·시공했다. 외장공사 수주액만 1백5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공사다. 너무 커서 절반은 다른 업체가 시공하도록 했다. 국제공항으로는 유일하게 마룻바닥을 사용한 본청사의 바닥도 이건마루가 설계·시공한 것이다. 바닥 또한 방대한 규모 때문에 절반은 프랑스 업체가 시공했다.

삼성물산에서 짓는 도곡동 초고층 아파트의 시스템 창호도 이건창호가 시공한다. 시스템 창호 공사 규모로는 최대인 82억원짜리 공사다.

건설업이 침체일로를 걷고 있지만 시스템 창호 시장은 오히려 확장되는 추세다. 이건창호가 시장을 창출하면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 매출면에서도 지난 97년 3백60억원이던 것이 올해는 이미 5백50억원을 넘어 7백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 외형이 커졌지만 재무구조는 오히려 더 탄탄해졌다. 작년에 2백9%이던 부채비율이 올해는 1백40%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내년에는 1백% 이내로 더 줄일 생각이다. 증자도 계획하고 있다.

사실 ‘시스템 창호’는 이건창호의 발명품이나 마찬가지다. 외국에도 시스템 창호라는 개념은 없다. 원래 시스템 창호는 미리 표준 설계돼 있는 다양한 외형(profile)을 이용, 어떤 형태의 창호구조에도 응용해 시공할 수 있도록 만든 창호를 두고 붙인 이름이다. 그야말로 시스템에 의해 시공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기존 창문과 달리 옆으로 열리기도 하고, 아래 위가 문틀과 떨어지기도 하고, 창문이 기울어지기도 하는 형태를 두고 시스템 창호라고 받아들였다. 다양한 시스템으로 열리는 창문을 두고 시스템 창호라고 받아들인 것이다. 때문에 외국에 가서 ‘시스템 윈도우즈(system win- dows)’라는 영어를 쓰면 통하지 않는다. 한국에만 있는 말이다.

지금은 종업원 4백여명에 연매출 5백억원을 능가하는 중견기업이지만 시작은 미미했다. 목재와 합판업을 해오던 이건산업이 건설자재 중 창문과 창틀이 가장 부실하고 고급화할 여지가 많다고 판단해 뛰어든 시기는 88년. 대졸 신입사원 8명과 현재 사장인 김영근 상무가 이건창호를 설립했다. 당시 이건산업의 사주인 박영주 사장의 지시로 시작은 했지만 창문의 ‘창’자도 모르는 신입사원과 시작한 사업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창문에 있어서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독일의 슈코(schuco)사와 기술 제휴를 맺고 배웠으나 시스템 창호에 대한 시장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제품을 팔 수가 없었다. 김상무와 8명의 직원은 아파트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주부들을 만나 이건창호의 장점을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그렇게 해서 한 해 두 해 성장시킨 회사가 오늘의 이건창호다.

덕분에 대형공사를 수주하는 요즘도 개인고객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자발적인 고객으로 계절이나 경기에 관계없이 꾸준히 구매하는 알짜 고객들이다. 시스템 창호를 카피(copy)하거나 흉내내는 기업은 많지만 이건창호처럼 개인고객들의 요구를 적시(適時)에 만족시키는 업체는 아직 없다는 것이 김사장의 설명이다. “대형 건물에 들어가는 물건과 달리 각기 다른 형태와 모양을 가진 개인고객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것이 이건창호의 기술력”이란다. 여기에 사후 서비스도 철저하다. 88년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에 공급했던 창문에 대해서도 여전히 AS를 해 준다. 김사장은 12년 전의 고객으로부터 AS요청이 들어오면 감개무량하다고 하지만 12년이 지난 제품을 애프터 서비스해 주는 업체가 우리 나라에 또 있을까?

이건창호라고 항상 탄탄대로만 달려왔던 것은 아니다. 97년 사업확장으로 인천에 제2공장을 지었다. 1백50억원이나 들어간 연면적 3천5백평의 대규모 공장을 완공하자 곧바로 IMF위기가 닥쳤다. 빚은 계속 불어났고 건설경기는 급랭해 시장 여건은 최악이었다. 다행히 냉동컨테이너 문짝(PLD) 수출이 호조를 띠어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수출물량이 늘어난데다 환율도 오른 덕분이었다. 여기에 노사합의로 인력감축 대신 잔업폐지 등 노동시간을 단축해 임금을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 월급은 20% 줄었지만 보너스는 기존대로 6백%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렇게 위기를 극복하자 작년부터는 오히려 인천 공장이 약이 됐다. 늘어나는 주문을 소화하고 시장을 확장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창호 사업자체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설계대로 만들면 되고 설계도 첨단공학을 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품으로 승부하기 위해선 공정합리화와 원자재 수급 등에서 독특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건창호의 경우 이건산업이 미국·칠레·솔로몬군도·중국에 1백% 출자한 법인을 통해 필요한 목재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또 수입된 목재를 부위별로 가공해 1백% 활용해야만 상품가격을 낮출 수 있다. 껍데기 버리고, 옹이 버리고, 잔가지 버리면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는 셈이 돼 창호가격도 비싸진다. 때문에 이 일은 종합상사도, 대기업에서 하청받는 소규모 공장이 할 수도 없다.

또 원천기술은 외국 제휴사에서 얻을 수 있지만 기후와 풍토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창문틀의 특징상 얼마나 한국풍토에 맞게 재창조하는가가 중요한 관건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인 89년 독일 기술 그대로 들여온 베란다 창문 1세트의 가격은 무려 4백만원. 당시 소형 승용차가 3백80만원 할 때다. 원재료 가격이 상승하고 임금,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 지금 베란다 창문 1세트 가격은 1백50만원 정도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을 감안한다면 5배가 넘는 생산성 혁신이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틈새 시장에서 시작한 사업이지만 이렇게 꾸준히 생산성을 높여 왔기 때문에 그 규모나 성장세가 틈새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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