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 알고 들으면 더 재밌는 판소리

중앙일보

입력

박동진 명창이 부른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 어느 제약회사의 광고로 나가 크게 히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제비 몰러 나간다"로 시작하는 노래말은 정작 당시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던 것 같다.

"재미 보러 나간다"로 알아듣거나 심지어는 "돼지 몰러 나간다"로 들었다고 하는 이도 있었으니 국악을 전공하는 사람으로 그저 우습게 넘길 수만은 없었다.

그것이 〈흥보가〉의 한 대목이라는 사실만 알았더라도 쉽게 제비를 연상할 수 있으니 제비를 돼지로 오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음악에는 가사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우리 음악 가운데 가사를 알아듣기 힘든 것이 적지 않다.

가곡이나 시조가 그 극치일 것이다. '동창이 밝았느냐'에서 "동차으앙이히이히히이~"로 모음을 해체하고 그것도 느려터지게 부르니 가사가 좀처럼 전달되지 않는다. 어쩌면 하드록이나 랩에서 가사를 빨리 내뱉을 때보다 더 알아듣기 어렵다.

이렇게 말을 풀어서 부르는 창법은 어의(語義)전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의 악기처럼 사용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점에서도 메시지보다 음성적 효과로만 목소리를 취급하는 일부 현대음악이나 록음악과 일맥상통한다.

빠를 때는 랩 못지 않다는 판소리도, 노래말을 알아듣기가 쉬운 편은 아니다. 한자투성이의 어려운 고사성어, 듣도보도 못한 이상한 물명(物名)들, 사어(死語)가 돼 쓰이지 않는 말들, 본고장 전라도 사투리 특유의 발음과 억양….

말과 노래는 다르다. 선율의 흐름과 악센트를 살리면서 연주해야 하는 성악곡의 노래말을 일상 대화나 방송멘트처럼 처리할 수는 없다.

게다가 가사 있는 음악이라고 해서 꼭 가사를 다 이해해야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의 경극(京劇)의 노래말은 현대 중국어가 아니고, 셰익스피어의 대사도 오늘날 통용되는 영어가 아니어서 그 뜻을 다 알고 감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독일이나 러시아 가곡을 즐겨듣는 사람들이 다 그 가사의 깊은 뜻까지 이해하고 듣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 점에서는 오히려 판소리가 나을 것 같다. 단어 하나쯤 모르더라도 앞뒤 문맥으로 미뤄 그런대로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 치더라도, 노랫말에 내재된 뜻까지 되새기며 음악을 감상한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사설을 다 알아듣지 않고서는 판소리 특유의 절묘한 비유라든가, 상황에 맞춰 소리와 장단을 짜맞추는 재미까지 맛볼 수는 없을 테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