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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이 좋아~

중앙일보

입력

나는 만족한다. 인터넷이 내게 준 기쁨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아무런 경력도 갖지 못한 나의 친구들이 ''온라인''에서 새롭게 도전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에 새 회사를 차렸다. 흔히 이야기하는 인터넷 콘텐츠회사다. 가장 안 좋은 시기였지만 내게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생각했다. 또한 나의 친구들에게도 물론 그랬다. 회사이름은 ‘인류사회’다.

이 회사이름을 말하자 샤프한 내 후배는 대뜸 “운동권 냄새난다”라고 했다. “그래?!”하고 보니 그애의 후각이 여전하다는 점을 인정해야겠다. 나와 함께 일을 벌인 친구들이 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이다.

나의 친구들이 선택했던 길은 단 하나였다. 스스로 노동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토록 빛나는 두뇌와 세련된 감수성과 반듯한 의지를 지닌 이들이 그들의 능력을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나는 원망했다.

그후 나는 이기적으로 내 능력을 개발하느라 바쁘게 살았고, 그들은 다른 이들를 위해 바쁘게 살았다. 나는 내 친구가 꽤 권위있는(?) 노동운동가 겸 이론가로 이름을 날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인연이 확실히 있었던지 정말 오랜만에 우연히 그 친구를 10여년만에 만났다.

그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아주 잘 살아왔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웃음을 참지 못하는 듯한 낙천성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었고 여전히 책을 많이 읽고 있었고 나보다 영화도 훨씬 많이 보았던 듯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인터넷으로 벤처투자를 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점이었다. “노동운동가가 웬 인터넷?” 하자 그가 웃으면서 간단히 답했다.

“한국사회가 변하면서 내가 원했던, 혹은 나를 필요로 했던 노동자들이 사라졌어. 노동자들의 문제는 권익 이전에 임금이고, 주차장 확보가 핫이슈가 됐으니까. 그래서 생각이 많아졌지. 한 3년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책 보고 경제학 공부를 하다 인터넷을 만났지. 바로 이것이구나 했어. 내가 꿈꾸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줄 도구가….”

그의 말을 들으며 비로소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를 비롯한 내 친구들에 대해 내내 내가 지녔던 어떤 죄의식을 떨어버릴 수 있었다. 그는 인터넷에 관한 글도 꽤 오랫동안 써왔고 인터넷의 미래와 철학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내게 했다.

다행히 나 역시 인터넷에 반쯤 미쳐 있던 때라 만나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로 알고 있는 것을 속속들이 펼쳐 보이며 자랑(?)을 해댔다. 마치 대학때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친구가 내게 자신이 하고 싶은 사이트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글로벌한 비즈니스로서 가능성도 덧붙였다. 듣는 순간 나는 혹했다. “우와∼. 그렇게 멋진 것이, 참 근사하다. 너무나 놀랍다!”라고 열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도 놀랍다. 왜냐하면 내가 한 일년 동안 이 이야기를 내 친구들한테 했는데 너처럼 빨리 알아듣고 너처럼 좋다고 한 사람은 없었거든.”

“내가 너무 단순한가? 무모한가? 아님 뭘 아직 잘 모르나?” 하는 새에 그가 말했다. “야, 우리 같이 해보자”라고.

그때 나는 몇몇 인터넷 회사로부터 같이 일하자는 오퍼를 받았다. 그래서 이리 갈까, 저리 갈까 망설이던 때였다. 그렇지만 그 친구의 말을 듣자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내가 그 친구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던 점, 그가 살아온 삶에 대한 존경 그리고 나의 이기심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뜻있는 일을 이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펼쳐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돈이 좋아. 돈 생기지 않는 일은 절대로 안해. 돈 많이 벌 수 있지?”하고 수익모델을 꼼꼼히 따졌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이미 나는 부여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긴 우리 회사는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인성(人性)테스트 프로그램을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 아직은 씨앗을 심는 단계지만 재미와 흥미를 갖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먹고 마시는데 큰 의미를 두었던 나는 자장면집에 가면 최소한 탕수육을 기본으로 시켜먹는 식생활을 해왔다.

그런데 검박한 이 친구들은? “자장면!”하면 끝이다. 어쩌다 회식을 할 때 버릇처럼 한우집으로 들어가는 나를 붙잡으며 “저렇게 비싼 쇠고기를! 삼겹살집으로!”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탕수육 먹어본 기억이 감감하고 한우등심집에 간 적이 언제더라 꼽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만족한다. 인터넷이 내게 준 기쁨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 아무런 경력도 갖지 못한 나의 친구들이 ‘온라인’에서 새롭게 도전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빛나는 재능을 개인적으로 피워보지 못한 그들이 이제 황금장미를 화려하게 꽃피울 순간을 지켜볼 수 있는 한 인간으로서의 행운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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