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계도 '25시'를 가리키고 있는가

중앙일보

입력

Joins 오현아 기자

"어떡하죠, 서울에서 아는 데가 덕수궁 밖에 없는데요."
(소설집〈경찰서여 안녕〉버전. "워칙한대유, 서울서 아는 디가 덕수궁 배께 읎네유.")

고향인 충남 보령을 떠나 두 달만에 서울 나들이를 한다는 소설가 김종광 님, 덕수궁을 찾는 걸 보면 역시 촌사람인가 보다. 그래도 그 촌스러움이 정겨운 것은 밑바닥 인생까지 끌어안는 그이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김종광 님은 부초(浮草)의 끈끈한 삶을 능청스럽게 표현하면서도 항상 개인을 억압하는 권력의 힘에 주목한다. 그래서일까, 프랑스 작가 게오르규의 소설〈25시〉를 주저없이 권한다.

김종광 님이 처음 이 소설을 접한 것은 스물 여덟 살 때, 그러니까 IMF 국면의 경제 위기로 농사 짓고 소 키우는 아버지한테 얹혀 살던 백수 시절이었다고 한다. 이 소설의 배경인 제2차 세계대전과 IMF라는 광폭했던 경제 난국을 동일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게오르규는 전쟁이 한창이던 2차 대전 당시를 이렇게 표현해요. '인간의 시간이 끝나버린 최후의 한 시간, 그 처절한 순간'이라고요. 전쟁에 휘말리면 모든 사회 구성원의 삶이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죠."

IMF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우리 시대를 예언한 전설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 아는 청년 농부, 요한 모리츠. 어느날 그는 면소재지의 한 권력자 때문에 유태인이 아닌데도 유태인 수용소로 보내진다. 행정 관료의 타성으로 진실을 밝히지 못한 채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인간 이하의 처참한 삶을 살아간다.

"요한이 공장에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유린 당하는 장면은 섬뜩할 정도예요. 찰리 채플린의〈모던 타임즈〉처럼 한낱 부속품으로 전락하는 노동자의 절망적인 모습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에요."

또 요한은 순수 혈통 게르만으로 발탁되어 표본실의 곤충처럼 취급 받기도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무자비하게 짓밟는 전체주의의 폭력 앞에서 개개인은 생명조차 담보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중 유태인들의 핍진한 삶을 엿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전쟁에 대하여, 인간의 본질ㆍ문명ㆍ체제에 대하여 고뇌하는 뜨거운 소설이에요. '25시'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책을 놓을 때까지 계속 생각한다면 책읽는 재미가 더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도 지금 '24시'를 지나 '25시'로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종광 님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