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글 지킴이 정재환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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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정재환이 네티즌께 드리는 편지'
(http://www.joinscast.com/asx/event/jjh.asx)

'방송진행자' 정재환(39)
씨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내고 난 뒤 3시간도 되지 않아 답장이 날아왔다. '메일 주셔서 감사하다' 가 아닌 '편지 주셔서 고맙다'는 내용으로.이 짧은 글에도 '메일'이니 '감사'니 하는 말 대신 '편지'니 '고맙다'는 우리말이 듬뿍 들어있다.

한글문화연대 부대표이자 우리말에 관한 책도 두 권이나 낸 '한글 지킴이'정씨의 한글 사랑은 남다르다.

그가 지난해 잘못된 방송언어를 꼬집은 '자장면이 맞아요, 잠봉은?'이란 책을 냈을 때만 해도 관심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심지어는 개그맨이 뭘 안다고 그런 책을 내느냐는 사람까지 있었다.

하지만 그저 그런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의 한글사랑은 식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사전을 들고 다니며 바른 표현을 찾았고 우리말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지난 2월 한글문화연대 창립의 주춧돌이 됐다.정씨는 3월엔 성균관대 어문학부에 진학해 본격적으로 우리말 공부를 시작했다. 또 지난달에는 '우리말은 우리의 밥이다'를 펴내 정씨는 방송국내 '한글 지킴이'로 우뚝섰다. 이젠 방송국에서 헷갈리는 표현이 있으면 정씨를 제일 먼저 찾는다.

'한글 지킴이'를 자처한 정씨지만 방송중에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는 건 아직도 어려운 일.

"저도 잘 모르는 형편에 공인이나 다름없는 출연자·진행자에게 창피나 주는 게 아닐까하고 주저하기도 하지만 시청자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낸다"며 "방송 언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예인들의 말글이야말로 각별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정씨는 특히 방송계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 일본어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날마다 '오도시'를 생각하며 '시바이'를 연구하고 '겐또'를 굴리고 '니주'를 깔고 제아무리 '간지'를 살려도 고작 '삼마이'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식"이라며 "일본문화 개방과 상관없이 불평등한 관계에서 나온 찌꺼기는 지금이라도 쓸어내야 한다"고 정씨는 강조한다.

그가 지난해 12월 우리 방송현장에서 분별없이 쓰이는 일본어를 모아 바른 우리말 표현을 소개한 '시바이는 이제 그만'이라는 소책자는 방송국내 언어순화에 큰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정씨에 의하면 이 속담은 일본 것이다)
.

정씨는 얼마 전에도 선행을 밝히기 꺼리는 출연자에게 "좋은 일은 주변에 '전염'시켜야 하니 알려달라"고 말했다가 아차하고 얼굴이 뜨거워진 적이 있단다.

그는 "말이라는 게 순간에 지나가는 것이어서 평소에 꾸준히 훈련하는 수밖에 없다"며 "이제는 사적인 자리에서도 바른말만 쓰고 비속어는 쓰지 않는 바른생활 사나이"라며 멋쩍게 웃는다.

"개그맨이 언어오염의 주범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직업상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아주 심한 표현은 삼가야한다"고 '한글지킴이'는 후배들을 걱정했다.

"4년전에 술도 끊어 일이 아니면 결석할 일이 없다"는 그는 "학교 수업과 겹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일 약속도 잡지 않는다"고 했다. 정씨는 지난 학기 지각·결석없이 4.5점 만점에 평점 4.26의 성적으로 이 학교 어문학부 전체 1등을 차지했다.

마지막으로 정씨가 낸 우리말 수수께끼.

"심청이가 몸을 던진 곳은 인당수일까요, 임당수일까요? 또, 볶음밥, 복음밥, 볶은밥, 복은밥 가운데 뭘 먹어야 할까요?"

한글문화연대(http://www.urimal.org)는 사회과학 전공 교수와 방송인을 중심으로 학술·언론분야부터 우리말을 살려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김영명 교수·한국방송공사 임성민 아나운서 등 1천여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Joins 이범준 기자<weiv@joins.com>
동영상 편집 joinscast 송정욱 PD<milso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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