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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인사이트] ‘규제 덩어리’ 카드시장 정부·카드사는 반성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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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나현철
금융팀장

요즘 카드업계와 정부가 들끓고 있습니다.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여신전문업법 개정안’ 때문입니다. 개정안엔 좋은 내용도 많습니다. 가맹점의 규모나 업종을 이유로 근거 없이 수수료율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했고, 대형 가맹점이 카드사의 팔을 비틀어 수수료율을 낮추는 부당행위도 금지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구절이 문제가 됐습니다. 영세 가맹점에 대한 우대수수료율을 정부(금융위원회)가 정하라고 한 것입니다.

 이후 난리가 났습니다. 카드회사들이 모인 여신금융협회는 “헌법소원을 제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카드사 노조도 “국회의 꼼수를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부 역시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실행도 어려운 불합리한 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모두 맞는 말입니다. 이번 일은 누가 봐도 국회의 잘못이 큽니다. 자영업자의 팍팍한 삶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다는 의원들의 심정은 이해합니다. 표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만, 이 방법이 공익을 위해 최선이라는 나름의 판단도 있었을 겁니다. 그래도 시장에서 정해져야 할 가격에 정부가 개입하라고 법에 못박는 건 도가 지나쳤습니다. 목표가 옳아도 방법이 틀렸으니 늦더라도 바로잡는 게 순리입니다.

 그러나 정부와 업계가 ‘피해자’처럼 구는 건 아무래도 어색합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데는 그들의 책임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는 세수 확대와 내수 증진을 위해 신용카드 시장을 육성했고, 카드사들은 가만히 앉아 커진 파이를 즐기기만 했습니다. <본지 2월 13일자 e2면>

이 과정에서 소득이 고스란히 노출된 자영업자들이 힘들어졌고, 신용이 뭔지 몰랐던 많은 소비자가 신용불량자가 됐습니다.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회나 정부·카드사의 잘못이 ‘오십보 백보’입니다.

 ‘시장원리’를 법안 철회의 명분으로 내건 것은 더 이상합니다. 국내 카드시장은 ‘규제 덩어리’입니다. 카드로 물건을 팔면 한참 뒤에, 더구나 수수료를 떼고 대금을 받습니다. 조금 깎아줘도 현금을 받는 게 장사하는 입장에선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법은 이를 금지합니다. 위반하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형사처벌까지 받습니다. 현금과 카드라는 결제수단 간의 경쟁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국내 카드시장은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불완전 시장’입니다. 이런 구조를 만든 정부와 수혜자인 카드사들도 이를 모를 리 없습니다.

 상대의 문제를 지적하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공감을 받으려면 더 큰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부와 업계는 “국회가 규제로 시장을 왜곡하려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경쟁을 제한하는 원천적인 규제에 대해선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시장원리는 공평해야 합니다. 국회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뒤라도 정부와 카드사가 자성의 목소리로 화답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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