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수길 칼럼

이게 비전인가, 유행이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김수길
주필

“시혜적인 배분이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통해 생산적인 참여복지를 실현하고 사회통합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할 것.”

 “국가와 시장, 시민사회가 대화와 타협, 참여와 협력으로 사회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안정’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

 “재원 대책에 대한 국민적 논의 필요. 2010년까지 추가적인 증세 없이 세출 구조조정, 비과세·감면 축소 및 세정 합리화와 투명성 제고 등을 통해 소요 재원 충당. 2011년 이후 어느 정도의 복지 수준을 얼마만큼의 국민부담으로 추진할지에 대한 국민적 논의 필요.”

 한가한 소리로 들리는가. 민주통합당의 ‘보편적’ 복지, 새누리당의 ‘평생맞춤형’ 복지가 유권자의 표를 탐하는 요즘, 자극적으로 와닿지 않는가.

 아니었다. 5년 반 전엔 아니었다. 2006년 8월 노무현 정부가 2030년까지의 국가 미래전략을 담은 위와 같은 내용의 ‘비전 2030’을 내놓았을 때, 우리 사회는 자극을 받았고 갈등을 빚었다. 사병 월급을 대폭 올린다거나 무상보육을 실시한다거나 아침 급식까지 확대해야 한다거나 대학 등록금을 절반으로 내려야 한다는 내용이 없었음에도.

 그 전 해 탄핵 정국을 거치며 균열이 심하게 간 채 친노, 반노로 갈린 우리 사회는 국가의 미래를 성장과 복지의 균형 측면에서 정파와 관계없이 차분히들 논의할 태세가 되어 있질 않았다. 그러곤 ‘잊었다’.

 망각과 과거 부정 속에 요동치는 또 한 정권이 지나가며 요즘 너나 없이 복지를 거론하는 ‘복지 쓰나미’가 오자, 스웨덴을 새삼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북구형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관심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봐야 하는 것은 스웨덴이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짜여져 왔는가’이다. 지금의 스웨덴식 국가 모델은 오랜 세월에 걸친 스웨덴식 사회적 합의에 의한 결과물이지, 정권을 탐하며 선거 공약으로 뚝딱 만들어진 정파적 산물이 아니다.

 스웨덴의 위원회(Kommitte)와 의견수렴(Remiss) 제도는 사회적 합의의 핵심이다. 겉으로만 보면 우리도 수많은 위원회를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내놓지 않느냐 할지 모르지만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과정과 내용이다. 그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비전 2030’과 같은 경우를 스웨덴식으로 풀어간다면 이럴 것이다. 노무현 정부든, 당시 한나라당이든, 성장과 복지 문제에 대한 이슈를 제안한다. 그러면 각 당을 대표하는 인사들, 전문가 그룹, 시민단체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이후에는 정부 간섭 없이 위원회 재량에 따라 ‘1~2년씩’ 활동한다. 그 결과를 국가정책보고서로 만들어 내놓고, 3개월 이상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다.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서면으로 의견을 낸다. 이를 취합해 정부안을 만들어 의회에 보내면 토론해서 결정한다. 모든 과정은 공개하고, 모든 것은 기록으로 남긴다. 그리고 의회 결정이 나면 국민 모두가 ‘따른다’. 정부는 작다. 대신 위원회 활동이 그를 보완한다. 민주주의는 선거 때 투표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연간 300개 안팎씩 활동하고 있는 위원회를 통해 늘 하고 있다.

 우리처럼 온갖 이슈가 압축해서 분출하고 긴급 상황이 벌어지곤 하는 나라에서 스웨덴식이 가능하겠는가 할지 모른다. 그러나 2006년부터 성장과 복지 문제를 5년간 스웨덴식으로 논의해왔다면?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도 갈지자 걸음을 하지 않고 DJ 때부터 5년간만 스웨덴식으로 논의해왔다면? 한·미 FTA도 몇 년간 의견수렴을 했다면?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지금쯤 성장과 복지에 대한,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나 일관성은 확보했을 것이다. 정권을 되잡으면 한·미 FTA를 뒤집겠다는 소리도 공약이 되질 않을 터이다.

 스웨덴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그네들의 밤은 우리 기준으로 따분하기 짝이 없다. 철저하게 가정과 가족 중심이다. 보드카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나라지만 술 판매는 제한되고 단란주점도 없다. 수도인 스톡홀름의 식당은 셀 수 있을 정도다. 포장마차나 동네 가게도 없다. 철저한 남녀 평등이고 부정부패는 제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선거 체제에서 정치인은 전문가지 ‘권력 직업’이 아니다. 굶던 시절에는 많은 국민이 이민 나갔고, 극좌·극우가 대립하며 노사 갈등이 극심했었지만 ‘벼랑 끝’에서 노·사·정 대타협을 이뤘고, 염치 없는 재벌도 귀족 노조도 없는 사회적 합의를 일궜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야만 한다. 그게 답이다.

김수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