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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좀먹는 약물파동

중앙일보

입력

성공적이었던 시드니 올림픽이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시드니 대회는 올림픽이 세계인의 화합의 마당이라는 점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사상 최대인 2백개국의 참여, 남북한의 개회식 동시입장, 호주 원주민출신 선수 캐시 프리먼의 성화 최종 봉송 등이 그에 기여한 요소들이다.

*** 中선수단 10% 출전포기

올림픽이 이제 정치적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가능성도 엿보였다.

소수의 호주 원주민 시위대를 제외하면 베를린대회 이래 늘상 올림픽을 괴롭혔던 정치적 선전이나 보이콧, 참가 불허 등이 전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또 몬트리올 대회 이후 국제 올림픽위원회(IOC)가 노력을 쏟아 부었던 재정적 독립도 더욱 공고해졌다.

NBC 방송국과 맺은 2008년 올림픽까지의 장기 중계권 계약과 올림픽 공식 후원회사 지정제도는 앞으로도 IOC가 안정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모리스 그린과 캐시 프리먼 등 세계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스타 선수들은 올림픽의 성공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 준 요소들이었다.

성공적인 올림픽의 뒤편에서 지난해부터 IOC를 괴롭혔던 개최지 선정 관련 뇌물 스캔들도 슬그머니 묻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올림픽의 앞날이 온통 장밋빛으로만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더욱 악화되고 있는 한가지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서울 대회 이후 세계인의 주목을 끌게 된 약물 파동이다.

문제는 올림픽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미 터져 나왔다. 그동안 검사가 이뤄지지 못했던 실행 향상제 에리스로포이에틴(EPO)의 검사 방침이 공표되면서 중국 선수단 전체 규모의 10% 가까운 인원이 아예 참가도 못한 채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추문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여자 단거리의 최고 스타 매리언 존스의 남편 C J 헌터의 약물 복용 경력이 터져 나왔다.

미국의 전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프랭크 쇼터는 미국 장거리 선수 중 90% 이상이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약물 정책과 양성 반응자 처리를 둘러싸고 IOC와 미국 올림픽 위원회가 설전을 벌이는 일도 일어났다.

부패한 관료조직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IOC로서는 약물 스캔들 없는 깨끗한 올림픽을 이룩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다.

또 올림픽의 상업적 성공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도 어떤식으로든 약물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잦은 약물 스캔들이 올림픽의 상품가치를 높여 주었던 깨끗함과 순수함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선수들은 자신의 상품성을 높이기 위해 약물을 써서라도 승리를 거두고 싶어한다. 결국 약물을 둘러싼 규제당국과 선수 사이의 숨바꼭질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약물과 선수들의 이의제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더욱 철저한 검사 시스템을 갖추려면 상당한 재정투자가 불가피하다.

따라서 IOC가 기대해 볼 수 있는 한가지는 잦은 약물 스캔들 때문에 약물에 대한 일반인의 비판의식이 무뎌지는 것이다.

*** 검사시스템 한층 강화를

실제로 IOC 회장 사마란치는 1998년에 약물 규제 기준의 변화를 시사한 적이 있다. 당시는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경기에서 약물 스캔들이 터져 나왔던 와중이었다. 그의 제안은 선수들의 경기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 약물 중 건강을 해치는 것만 금지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몸에 해롭더라도 더 성능 좋은 약물이 나왔을 때 이를 마다할 선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98년 갑작스레 죽음에 이르렀던 서울 대회의 육상 스타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같은 사례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지난 23년간 최소 25명의 일급 사이클 선수들이 EPO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
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스타 선수들의 희생이 늘어날 때에도 일반인들이 계속 무심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약물은 이미 지나칠 만큼 비대해진 올림픽이 현재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느냐를 결정할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소변검사를 위한 화장실 가기를 두려워하는 선수가 늘어날수록 올림픽의 미래는 그만큼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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