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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사정관들, 2012학년도 입학사정관 전형 해보니

중앙일보

입력

대학입시 입학사정관전형에 응시하려면 단순히 실적을 나열하기보다 전공·진로·목표와 관련된 활동과정을 나타내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는 지름길이다. 서울 한 대학의 입학사정관전형 모의면접에서 사정관들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전형을 실시한 결과 응시생들은 여전히 과정보다는 실적 위주로 심사서류를 작성해 제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봉사활동 시간, 각종 활동결과물, 방대한 포트폴리오 앨범 등 질보다는 분량으로 입학사정관의 호감을 사려는 수험생들도 여전했다. 심사서류에도 활동 과정에서 느낀 교훈을 적기보단 자신의 치적을 화려한 문체로 포장하는 데 치중하는 경우도 많았다.

실적 나열보다 전공 연계 활동을 보여줘야

 “자기소개서나 학업계획서를 보면 단순히 실적 위주로 나열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요. 문제는 그 속에 뚜렷한 진로와 목표가 없다는 거죠. 있어도 입시 직전에 급조한 거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한 활동내용과 연계성이 부족하다거나, 지원한 전공과의 연관성이 부족한 점이 결국 심층면접에서 드러나기도 합니다.”

 성균관대 김건영 선임입학사정관의 말이다. 그는 “진로·목표·전공을 명확하게 결정하지 않아 활동결과를 많이 나열하는 방법으로 포장해 좋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경우 입학사정관의 입장에서 보면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진로·목표·전공과 관련성이 부족한) 그런 활동들을 왜 했을까 하는 의구심만 들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학사정관전형 신입생 모집 때마다 사과박스 크기로 포트폴리오 결과물을 대학에 보내는 수험생들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 속에는 과학창작물, 실용신안을 등록한 제품이나 실물 모형, 출간한 책, 앨범 등이 들어있다. 중국어과에 진학하려는 수험생의 경우 그 동안 중국어로 쓴 일기를, 혹은 국문과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은 습작해온 작품들을 보내기도 한다.

 이에 대해 한양대 유권창 입학사정관팀장은 “자기소개서·학업계획서·학교생활기록부상에 기록한 활동과 연관됐다면 1~2건은 평가 참고자료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관성이 부족하거나 응시생의 특징을 나타내는 맥락에서 벗어난 과도한 포장이라고 판단되면 오히려 나쁜 인상을 심어주는 독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활동실적 양을 앞세우는 응시생에 대해 유 팀장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유형’이라고 지적했다. 유 팀장은 “진로를 늦게 결정한 점이 이유가 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대학입학 수시모집의 분위기와 불안감에 쫓겨 지원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1000시간에 이르는 봉사활동만 앞세워 입학사정관전형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이 있는데 대학 입장에서 보면 전형적인 탈락감”이라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전형은 학생의 학교활동·교과성적·진로계발·특기적성·추천서 등 여러 요소들을 종합 평가하는데, 그런 학생은 불균형한 이력을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기소개서·학업계획서 등 심사서류를 화려한 수식어로 작성하려는 경향도 여전했다. 동국대 이재원 입학사정관은 “추상적인 표현으로 채워진 내용이 많았다”며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활동 결과만 갖고 꾸미려고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활동 과정에서 학생 스스로 느끼고 깨달은 점과, 이를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하게 된 내용을 담백하게 전달하기보다 호감을 사는데 급급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창의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체험활동에 대한 수험생들에 이해가 부족한 점도 지적됐다. 경희대 임진택 책임입학사정관은 “박물관·미술관·공연·영화 관람이나 단순한 여름휴가까지 창의적인 체험활동으로 내미는 수험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이 바라는 체험활동은 단순한 일회성 체험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체득하며 성장한 경험이다. 임 입학사정관은 “독서를 활용한 간접 체험에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며 “희망 전공과 관련된 도서를 읽고 진로에 대해 고심한 흔적을 보여주면 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을 생활 속에 응용해보는 탐구 경험을 갖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 입학사정관도 “단순한 여행이라도 자신의 학업과 진로에 영향을 미치고 이를 통해 스스로 발전한 경험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면접에선 단답을, 추천서는 모범양식을 피해야

 심층면접에서 응시생들이 저지른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입학사정관들은 단답형 대답을 꼽았다. 짧게는 예, 아니오 식이거나, 한 두 문장으로 간략히 답변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유팀장은 “수험생이 지원한 전공과 대학에 대한 애정이 묻어나지 않아 학생이 입학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것인지 입학사정정관들이 의심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전형의 1차 평가단계인 서류심사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았는데도 정작 2단계 평가인 심층면접에선 정반대의 평가를 받는 수험생도 적지 않았다. 김 입학사정관은 “서류 내용 상에선 목표와 진로가 뚜렷하고 전공과 관련된 활동도 우수해서 1차 심사를 통과시켰는데, 심층면접에서 구체적인 활동내용을 물어보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평가했다. “심지어 응시생이 직접 조사·작성했다는 논문에 대해 전공교수가 관련 지식을 물어보면 대답조차 못하는 학생도 종종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에 대해 아주대 민호근 입학사정관은 “타인이 대신 작성해줬거나 혹은 수험생스스로 자신의 체험과정에 대해 두루 생각하거나 고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심층면접 때 면접대기실을 보면 응시생들이 모두 자기소개서 내용을 외우는 데 골몰해있다”고 회상했다. 이어 “체험할 때 자신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고 어떤 성과를 이뤘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느낌과 교훈을 깨달았는지 생각해야 하는데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만 외운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입학사정관전형에 첫 도입한 표절검색시스템을 실행한 결과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발견됐다. 한 교사가 수십 명의 학생의 추천서를 쓰는 경우 같은 단어와 표현, 비슷한 문장이 반복될 수 밖에 없는 현상이 발생하는 점이다. 특히 한 명의 교사가 지도한 같은 동아리 소속의 진로도 같은 학생들에게 추천서를 모두 써주는 경우 내용의 유사도가 더 높게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유 팀장은 “이를 입학사장관자문위원회에서 전형진행과 심사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지 먼저 심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범양식을 만들어 놓고 특정 내용과 단어만 바꿔 끼우는 식으로 추천서를 쓰는 행태는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추천서를 써준 교사와 학교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한 학생이 수시에서 여러 대학에 중복 지원함으로 인해 추천서를 여러 번 써야 하는 교사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정식 기자 tangopark@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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