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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만 해도 우승인데 … 서희경·유소연 통한의 18번 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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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코르다가 호주여자오픈 우승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멜버른 AFP=연합뉴스]

개막전부터 피 말리는 혈투가 벌어졌다. 6명이 공동선두로 연장전에 나선 두 번째 홀. 호주 멜버른의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면서 7.5m 버디 퍼트를 준비하던 키 1m80㎝의 제시카 코르다(18·미국)의 그림자를 더 길게 늘어뜨렸다. 퍼터를 떠난 공은 오른쪽으로 출발했다가 라인을 타고 홀 왼쪽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퍽’ 하는 소리가 났다. 손에 땀을 쥐게 한 5시간35분의 긴 승부에 드디어 마침표가 찍혔다.

12일 호주 멜버른의 로열 멜버른 골프장(파73·6505야드)에서 열린 올 시즌 LPGA 투어 개막전인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 최종 4라운드. LPGA 투어 데뷔 2년차인 신예 코르다가 합계 3언더파로 연장전 끝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4언더파 1타 차 단독선두로 출발했던 코르다는 마지막 날 서희경(26·하이트)과 유소연(22·한화), 브리타니 린시컴(27)·스테이시 루이스(27·이상 미국), 훌리에타 그라나다(26·파라과이)와 동타를 이룬 뒤 연장 두 번째 홀에서 극적인 버디로 승부를 갈랐다.

 못내 아쉬운 것은 유소연과 서희경의 패배였다. 두 선수는 72번째 홀인 4라운드 18번 홀(파4)에서 나란히 4언더파로 1m와 1.2m의 파 퍼트를 앞두고 있었다. 둘 중 한 사람만 퍼트를 성공해도 우승이었다. 그러나 서로를 지나치게 견제하며 신경전을 벌이는 바람에 두 선수 모두 파 퍼트에 실패했다. 지난해 7월 US여자오픈 우승을 놓고 연장 승부를 치른 두 선수의 ‘데자뷰’는 결국 ‘남 좋은 일 시켜주기’로 끝나고 말았다. 유소연은 지난 5일 끝난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호주여자 마스터스 대회에서도 최종 라운드에서 역전을 허용해 준우승에 그쳐 두 대회 연속 뒷심 부족에 시달렸다.

 세계랭킹 285위인 코르다는 이번 우승으로 14년 전 아버지 페테르 코르다(44·미국)의 영광을 재현했다. 페테르는 체코 출신으로 코르다가 네 살 때인 1998년 메이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남자 단식에서 우승한 스포츠 스타다. 그는 딸 코르다가 14살 때 미국으로 이민했다. 부녀는 종목은 달랐지만 14년 만에 테니스와 골프에서 호주의 내셔널 타이틀을 들어올렸다. 코르다는 “나는 아버지에게 이번 주 호주에서 아버지의 위대한 업적을 깨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며 “그렇다고 아버지의 훌륭한 업적을 뛰어넘은 것은 아니다”라고 눈물을 보였다.

 한편 이번 연장전은 1999년 제이미 파 크로거 클래식에서 6명이 나선 연장전에서 박세리(34)가 우승한 이후 최다 선수 출전 LPGA 연장전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최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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