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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중동 특수 잔치판

중앙일보

입력

고유가로 오일달러가 밀려와 호황을 맞은 중동지역에서 각종 인프라.플랜트 등 대형 공사 발주가 쏟아지고 있다.

4월 말까지 2백29억달러의 각종 사업이 시작됐으며, 연말까지 5백억달러대의 발주가 일어날 것으로 업계는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에는 기대했던 중동특수 바람이 불지 않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한국 업체들은 중동에서 17건 6억8천만달러 상당(계약 기준)의 공사를 수주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22건 25억8천만달러)의 4분의1 수준이다.

중소 규모의 일반 공장 플랜트 수주가 많아 건당 평균 수주금액도 4천만달러로 지난해(1억2천만달러)보다 빈약하다.

지난해 10억4천만달러로 최대 수주국이었던 이란에선 34만달러의 공사를 수주하는 데 그쳤다.

업계는 ▶현대건설.대우건설.신화건설 등 중동에서 건설 경험이 많은 업체들이 대부분 수주 실적이 적고▶금융권이 구조조정의 여파로 입찰보증.운영자금 지원에 소극적이어서 아예 입찰참여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8월 말 서울에서 열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무역관장 회의에서 중동지역 무역관장들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와 국내 건설업체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졌으며, 한국 기업의 기술에 대한 믿음도 낮은 편" 이라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5월 말 아랍에미리트에서 발주한 3억달러의 발전소 입찰에서 중동 시공 경험이 많은 현대건설이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도 이탈리아 회사에 밀려 탈락했다.

KOTRA 두바이무역관은 "현지 언론들이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 관련 기사를 여러 차례 보도하는 등 회사 이미지가 떨어졌기 때문" 이라고 보고해 왔다.

지난해 쿠웨이트 국영 석유회사에서 플랜트를 수주한 신화건설 등 국내 건설업체들은 최근 쿠웨이트 회사로부터 이번 주말께 회사 상황을 직접 조사할 담당자들을 파견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건설업계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공사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계약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겼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신화건설은 이란에서 수주한 9천6백만달러 상당의 화학플랜트 건설을 이달 초 포기했다.

중동 국가들은 공사규모가 커지자 공사자금을 시공업체가 조달해 사업을 벌이도록 하는 민자유치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에 얽매여 자금 지원을 하려들지 않고, 외국계 은행들은 한국 업체의 신용도가 낮다며 등을 돌리기 때문에 건설업체는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최강일 실장은 "해외 건설공사 수주는 국가 신인도와 직결된다" 며 "국내 금융권의 부실 때문에 해외건설 수주가 제대로 안되는 만큼 정부가 나서 지원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고 말했다.

현대건설 이석일 이사는 "은행 보증을 받지 못해 규모가 큰 민자유치 발주공사는 입찰에 참여할 엄두도 못낸다" 면서 "현지 정부 재원으로 발주하는 공사에 참여할 생각" 이라고 말했다.

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ADNOC)는 천연가스(LNG)생산시설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발주할 때 원청등록 30여개 업체만 입찰에 참여토록 하는데 한국 업체는 들어 있지 않다.

ADNOC측이 걸프지역에서 동일한 공사를 수행한 경험이 있는 업체에만 원청자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업체들은 담수화 사업.전력설비.중소형 플랜트 등을 단독 또는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하고 있지만 규모가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1970~80년대에 하청을 받아 시공하는데 치중했던 국내 건설사의 이미지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LG상사 플랜트사업부 김수언 부장은 "국내 업체의 대형 플랜트 건설 수준도 꽤 높아졌다" 면서 "일부 회사가 정유시설 공사에 참여하기 시작한 만큼 한국 업체의 기술력을 인정받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릴 것" 이라고 말했다.

중동지역 무역관장들은 ▶건설업체는 LNG 생산시설 등 대규모 공사를 따기 위해 선진국 업체와 제휴하는 한편 현지 업체와 연결해 자재.인력을 효율적으로 조달하고 ▶정부는 산업설비 수출금융 등 자금지원을 늘려 제2의 중동 특수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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