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김효재 검찰 조사 수위, 정국 뇌관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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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호 03면

지난주 박희태 국회의장이 돈봉투 사건에 대해 “모든 걸 짊어지고 가겠다”며 사퇴했다. 돈봉투 배포의 총지휘 의혹을 받고 있는 김효재 청와대정무수석 역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물러났다. 35일 만에 사건이 마무리되는 국면이지만 고삐 풀린 임기 말 검찰은 ‘정치적 책임’을 넘어 ‘법적 책임’까지 물을 기세다. 다음 주 박 전 의장, 김 전 수석에 대한 검찰의 조사와 야권의 파상 공세가 예고된 가운데 조사의 강도, 법적 책임의 수위는 정국의 뇌관이 될 전망이다.

박 전 의장은 그간 부인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돈 심부름을 했던 비서관이 “검찰에서 사실대로 얘기했다”고 토로하자 다음 날 아침 서둘러 의장직을 버렸다. 박 전 의장은 평소 ‘인지어지(人之於地) 시기불천지지(恃其不踐之地)’라는 말을 애용했다. ‘사람이 길을 걸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아직 밟지 않은 땅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그는 “인생을 살다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게 된다. 누구에게나 인연을 소중히 하고 잘 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그가 ‘은폐 진술’ ‘꼬리 자르기’를 강요받았던 비서관의 분노와 반발로 24년 정치 인생을 구차하게 마감한 것은 아이러니다.

그의 실기(失機)와 낙마를 놓고 “총기(聰氣)가 다했다”는 등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중 가장 와닿는 말은 “하늘이 이제 그를 버렸다”는 것이다. 13대 총선(1988년)에서 등원했고 국회의 마지막 민정당(民正黨) 출신 의원이던 박 전 의장은 구시대 정치의 막내 격이었다. 돈을 마련해 세력을 구축하는 걸 정치의 최우선 수단으로 삼던 시대였다. 변화에 둔감했던 박 전 의장, “내가 무슨 죄인이냐”고 했던 김 전 수석과 함께 그 관행, 그 시대는 종언(終焉)을 고했다.

여권 핵심세력의 몰락과 함께 지난주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의 한마디가 의미심장했다. “국민이 바라는 공천이 돼야 한다. 국민이 거부하거나 그건 아니다 하는 공천은 하지 않겠다”는 언급이다. “도덕성에 걸리면 무조건 공천에서 제외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도 했다. 다음 주 공천 심사를 앞두고 나온 이 말에 청와대 측은 물론 이명박계 의원들의 긴장이 역력하다. 공천의 칼자루가 4년 전과 달리 박근혜계로 넘어 온 터다. 더구나 돈봉투를 받고 반환했던 고승덕 의원 외에 검찰이 추가로 돈봉투 배포 대상을 조사할지가 관건이다. 당시 적극적인 박희태 지원에 나섰던 이명박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이유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경구를 확인해 준 여권과 달리 ‘분열로 망한다’는 야권 쪽은 김두관 경남지사의 17일 민주통합당 입당, 공천심사위원을 둘러싼 민주통합당 내 갈등을 일단 봉합하며 세를 모아가고 있다. 그러나 오만이 화를 부르는 법. ‘집권 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라는 그들의 승부수는 보수의 응집과 합리적 시민의 외면이라는 최대 악수(惡手)로 변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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