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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같이 식사하자던 훈남 보자마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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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55·전 법무부 장관) 변호사는 커피 매니어다. 서울 강남역 근처의 로펌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손수 커피를 내렸다. “모닝커피가 제일 좋다. 아침에 한 잔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든다.” 강 변호사는 “내겐 커피가 맞다”고 했다. 이유가 있다. 사상체질로 볼 때 그는 태양인이라고 했다. 한국인의 상당수가 음체질이다. 양체질은 드물다. 태양인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외향적인가?”라고 물었더니 “내겐 양쪽 측면이 다 있다”고 답했다. 강 변호사는 “4월 총선에서 어떻게 도와야 할지를 생각 중이다”고 밝혔다. 그가 보는 삶과 정치를 물었다.

글=백성호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서울대 법대 300명 중 여학생 단 세 명

강 변호사는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여고를 나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법대생 300명 중에 여학생은 단 3명이었다. 사법연수원에서도 여성은 2%였다. 판사가 됐을 때도 여성 판사는 3% 이내였다. 그 와중에 여성 최초 단독부 판사, 여성 최초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대학생 때 “아주아주 새침데기였다”고 했다. “1학년 때였다. 교내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어떤 남학생이 식판을 앞에 놓더니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다. 교련복을 입고 있었다. 3학년 아니면 4학년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식판을 들고서 나갔다. 옆을 지나며 흘낏 남학생을 봤다. 그런데 너무 괜찮았다. 요즘 말로 ‘훈남’이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으니까.”

강금실 변호사는 서울에서 자랐다. 경기여고 재학 시절에 찍은 사진. 그는 “교복 입은 여학생끼리만 어울리다가 남학생 300명에 여학생 세 명인 법대에 들어가 무척 낯설었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반응했나.

 “나는 여고를 나왔다. 교복 입고 여학생들끼리만 있다가 남학생이 많은 환경에 들어가니 낯설고 어색했다. 그게 우리 교육에서 아쉬운 점이다. 나중에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다면 그 남학생을 찾아보고 싶다.”

●우리 교육의 아쉬움이라면.

 “교육이 뭔가. 스스로 해결하는 힘을 길러 주는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일찍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인생에서 그리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나는 그게 교육의 핵심이라고 본다. 화가 나고 억울할 때 내 마음을 어떻게 관리할지, 교육을 통해 그런 걸 가르쳐야 한다. 어떻게 밥 먹고 노동하며 경제를 꾸릴지, 사람과 어떻게 소통하며 살지, 삶에 필요한 아주 실질적인 걸 가르쳐 줘야 한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다

올해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강 변호사는 참여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거쳐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도 출마했다. 강 변호사에게 ‘요즘 정치’를 물었다.

●총선과 대선, 한마디로 무엇이 중요한가.

 “정의란 과연 무엇일까. 요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권력을 획득해 사적인 이익을 위해 쓰느냐, 아니면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느냐. 지금껏 우리의 관심사는 주로 그것이었다. 그래서 정치는 늘 ‘권력 획득’을 위한 싸움판이었다. 나는 그런 정치에 과연 정치성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정치성이라면.

 “결국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지 않나. 사람이 둘이 모이고, 셋이 모이면 서로 말을 한다. ‘우리 뭘 할까. 사냥을 할까. 아니면 빵을 구울까’. 그런 게 바로 정치다. 정치는 소통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소통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정치다. 거기에 동의하면 많은 게 달라진다. 권력 투쟁과 권력 획득이 정치라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리게 된다.”

●어떤 세상이 열리게 되나.

 “권력 투쟁과 권력 획득만 정치라고 볼 때는 무조건 상대를 이겨야 한다. 상대방이 죽든 말든 상관없다. 이기면 그만이다. 이긴 뒤에도 자신의 지지층을 위해서만 일을 한다. 전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자신의 지지세력을 위해 일하지,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하는 대통령이 되긴 어렵다. 게다가 보수 대통령에겐 진보가 동의를 안 해 주고, 진보 대통령에겐 보수가 동의를 안 해 준다. 그런 정치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2006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세하는 모습. 당시 열린우리당의 노란색 대신 빨강과 파랑을 섞은 보라색을 선택, 정치 통합과 사회 통합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권력 대신 소통에 무게를 실으면.

 “소통의 첫걸음은 ‘듣는 것’이다.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데?’라며 들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법무부 장관 당시 검찰 개혁에서 ‘소통의 부재’로 비판받지 않았나.

 “개혁 과정에서는 소통을 시도했다. 그러나 권력 메커니즘 안에서 상대방을 설득하고 대화를 여는 데는 내가 많이 미숙했다.”

●왜 미숙했나.

 “법무부 장관으로서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데 너무 치우쳐 있었다. 눈앞의 현실을 두루 보고, 깊이 읽는 여유와 능력이 많이 모자랐다. 그 점도 참 아쉽다.”

기성 정치권 바뀌어야 한다

올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인터뷰를 하다가 궁금해졌다. 그가 읽는 ‘정치의 바둑판, 선거의 바둑판’은 어떤 걸까.

●한나라당이 당명까지 바꿨다. 보수정당의 문제가 뭔가.

 “영국 보수당의 강령을 본 적이 있다. 깜짝 놀랐다. 민주통합당의 강령보다 훨씬 개혁적이었다.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의 문제가 뭔가. 진정한 보수의 역할을 못 한다는 거다. 우리 사회가 헌법에서 합의한 가치를 실천하는 것이 보수정당이 할 일이다. 거기서 미흡한 점을 치고 나오는 것이 진보정당이다.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실천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원인이 뭐라고 보나.

 “첫째 역사적 연원이 있고, 둘째 노력을 안 했다. 우리의 정치역사 자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보수가 형성된 서구 영미식의 과정과 너무나 다르다. 그게 달라도 우리가 노력하고 공부해야 한다. 역사만 탓하기에는 노력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헌법은 그 사회가 합의한 기본이다. 보수의 의무는 헌법의 가치를 실천하는 거다. 진보를 탓하기 전에 보수가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안정된다.”

●민주통합당의 문제는 뭔가.

 “젊은 세대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열광하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이다. 확 바꿔야 한다. 새로운 정당문화를 수용해야 한다. 정당 내부문화에서도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새로운 정당문화를 수용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아 보인다. 가령 정치인은 늘 정장에 넥타이를 매지 않나. 주말에 하루 정도는 캐주얼로 입을 필요가 있다. 문화를 바꾸면 생각도 바뀐다.”

●개인적으로 안 원장을 아나.

 “안 원장은 잘 모른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선에서 풀어야 할 숙제는 뭔가.

 “다음 세대와의 소통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우리가 열심히 정치하는 이유가 뭔가. 우리가 잘 먹고 잘사는 것도 있지만,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겨 줄 건가도 중요하다. 미래세대와의 소통, 그게 박근혜 위원장의 숙제라고 본다.”

●지금은 로펌 변호사다. 다시 정치를 할 의향은.

 “판사·장관·정치인·변호사 등 나는 이미 삶의 영역을 다양하게 겪었다. 그걸 굳이 닫을 이유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역량, 여건이 맞으면 다시 할 수도 있다.”

한국무용에 빠진 이유

가톨릭 신자인 강 변호사는 최근 4박5일 피정을 다녀왔다.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수원의 피정센터였다. 거기서 그는 미사를 드리고, 기도하고, 묵상했다.

●피정에서 개인적으로 묵상한 주제가 있나.

 “‘용서’였다. 용서가 무엇일까, 왜 용서를 할까. 그걸 묵상했다. 결국 상대방을 잊기 위해 용서를 하는 것이더라. 용서를 하지 않고 있으면 내가 묶이게 되니까. 용서를 하면 내가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내려놓는 것이 쉽진 않다. 재물이나 권력은 오히려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의 집착과 분노, 상처는 참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용서가 더 소중하다.”

● ‘나만의 인생대처법’ 같은 게 있나.

 “있다. 사람은 어려움을 통해 배운다는 거다. 그런 상황을 뚫고 나가면서 성장하더라. 그래서 어렵고 힘든 일이 고통이 아니라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란 걸 알게 됐다. 그걸 아니까 어려움에 대처하는 게 달라지더라.”

●올여름 가톨릭대 생명대학원에서 ‘생명문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는다.

  “근대 이후 우리는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 살아왔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통합적이고, 전체적이고, 공존적인 시각을 배웠다. 가령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꽃도 우주의 주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 통합적인 생각이 내 사고를 풍요롭게 만들더라.”

 강 변호사는 예전에 명무전 공연을 보다가 한국춤의 아름다움에 전율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전통춤을 배웠다.

●한국춤, 직접 춰 보니 어땠나.

 “한국춤의 미학은 명상과 연결된다. 춤을 추다 보면 저절로 호흡이 배 밑으로 내려간다. 그래서 나중에는 발로만 춤을 추게 된다. 팔은 그냥 따라올 뿐이다. 동작이 아무리 빨라져도 머리는 맑게 비어 있다. 몸은 동적이고, 머리는 정적이다. 그래서 정중동(靜中動)이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춤에 경륜이 묻어난다. 그래서 더 좋다.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요즘도 춤을 추나.

  “얼마 전에 발목을 다쳤다. 요즘은 실내에서 자전거를 탄다. 승무나 살풀이 춤은 에너지 소모량이 테니스보다 많다. 한국춤을 추는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다.”

●늘 패션이 화제다.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를 맡을 때부터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의상은 사회생활의 매너니까. 그런데 취향도 바뀌는가 보다. 요즘은 편하게 검정 옷에 검정 가방 들고 다닌다.”

WhatMattersMost?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

14년 전 지인 한 분이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강아지를 데리고 왔다. 그렇게 만난 복실이는 이제껏 나와 함께 살고 있다. 마음이 가장 힘들었을 때 복실이는 내 곁에 있어줬다. 최근 큰 수술을 했는데, 아픔과 죽음에 대한 체험을 했는지 애정표현이 더 간절해졌다. 복실이는 내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했다. 사람이 아닌 존재와도 의리를 지키고 감사해 하며, 깊은 영적 교감의 영역에서 서로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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