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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소강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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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덕일
역사평론가

앞 칼럼에서 말한 대동(大同)사회보다 조금 못한 세상이 소강(小康)사회다. 조선 태종은 재위 7년(1407) 종3품 이하 문신들의 시험 때 직접 시무책(時務策)을 출제하면서 “내가 부덕(否德)한 몸으로 한 나라 신민(臣民)의 임금 자리에 올랐는데 비록 덕교(德敎)를 백성들에게 미친 것은 없지만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거의 소강(小康)을 이루기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도전도 태조의 입을 빌려 대신 출제한 과거시험 문제인 전시책(殿試策)에서 “우러러 전대(前代:고려)를 본받아 꼭 소강(小康)을 이루려고 기약한다”(『삼봉집(三峰集)』)고 말했다. 조선뿐 아니라 고려도 소강사회를 지향했다는 뜻이다.

 대동사회는 요순(堯舜) 임금이 다스리는 사회를 뜻하고, 소강사회는 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성왕(成王)·주공(周公)이 다스리던 시대를 뜻한다. 요순이 다스리는 무위지치(無爲之治)보다는 못하지만 그럭저럭 살 만한 세상이다. 자유(子游)에게 대동사회의 모습을 설명한 공자는 이어서 소강사회의 모습을 설명한다. 공자는 “지금은 대도(大道)가 모습을 감추니 천하는 자기 집안의 것이 되었다”고 한탄했다.

 이 부분이 대동과 소강의 가장 큰 차이다. 대동사회는 천하가 공공을 위하는 천하위공(天下爲公) 사회라면 소강사회는 천하가 자기 집안을 위하는 천하위가(天下爲家) 사회였다. 공자는 소강사회는 자기 어버이만을 어버이로 여기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며 재화와 힘을 자기만을 위해 쓴다고 말했다. 천자나 제후 같은 대인(大人)들은 자리를 세습하는 것을 예(禮)로 삼고, 성곽과 해자(垓字)를 파서 스스로 굳게 지키는 사회다.

 그러나 소강사회도 그럭저럭 살 만한 사회로 보았다. 공자는 그 이유를 “예의를 벼리로 삼아서(禮義以爲紀), 군신(君臣) 사이가 바르게 되고, 부자(父子)가 돈독하게 되고, 형제가 화목하고 부부가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우·탕·문왕·무왕·성왕·주공 여섯 군자(君子)는 예(禮)를 삼가지 않은 이가 없어서 의(義)가 드러나고, 믿음이 이루어졌는데, 공자는 “만약 이를 따르지 않는 자가 있으면 집권자라도 백성들로부터 재앙으로 여겨져서 쫓겨났다”면서 “이를 일러 소강(是謂小康)”이라고 한다고 『예기(禮記)』 ‘예운(禮運)’ 편에서 말했다.

 중국 공산당은 2003년 대략 소강사회는 이룩했다면서 앞으로 대동사회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이 유교국가로 갈 것으로 보는 주요한 근거의 하나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같은 난세(亂世)에서 벗어난 것이 맞지만 지금이 소강사회라는 데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우리 사회도 소강사회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