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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밝아지면 병도 빨리 낫는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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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세브란스 병원학교에서 키즈유나이티드 봉사자들이 아이들과 함께 잡지·털실 등을 이용해 콜라주 작품을 만들고 있다. [김진원 기자]

“엄마, 나 저녁 안 먹어도 되니까 미술 수업 먼저 받을래.”

 지난달 30일 저녁 서울 신촌세브란스 어린이병원의 병원학교 앞. “밥을 먹어야 힘 내서 수업을 더 잘 받지”하는 엄마의 설득이 없었다면 정은(7·여)이는 저녁식사도 거른 채 미술수업을 들을 뻔 했다. 쓸개즙이 장으로 배출되지 못해 간에 손상을 주는 선천성 담도폐쇄증을 앓고 있는 정은이는 염증 때문에 1주일째 입원 중이다. 어머니 고주영(36·인천 남동구)씨는 “1년에 몇 번씩 입원을 해야 하는데 병원학교 미술수업은 안 빠지고 꼭 간다니까요”라고 했다.

 미술수업은 대학생 봉사동아리 키즈유나이티드(KIDS United)의 언니·오빠들이 정은이 같은 꼬마 환자들을 위해 일주일에 세 번 진행한다. 이날은 잡지·털실·색종이 등을 도화지에 붙이는 ‘잡지콜라주’ 수업이었다. 파란 앞치마를 두른 대학생 봉사자 5명은 링거 주사나 붕대 때문에 손이 자유롭지 못한 꼬마환자 6명과 짝지어 앉았다.

 “이건 마술사고 이건 움직이는 탁자에요.” 수업이 시작되자 정은이는 신이 났다. “우와~ 멋지다. 도화지 가운데 빈 공간도 예쁘게 꾸며보자.” 정은이의 짝꿍 선생님 김혜진(23·숙명여대 홍보관광학 3)씨는 정은이가 다치지 않도록 가위질이나 털실에 본드 붙이는 일을 도왔다.

 병원학교는 장기입원이나 통원치료로 학교교육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어린이병원 안에 마련된 학교다. 요일별로 한자·영어 등의 수업이 마련돼있고, 주로 개인봉사자들이 와서 가르친다. 키즈유나이티드는 6,7명이 한 팀을 이뤄 수업을 진행하는데, 과목별로 전공자가 40% 이상 포함되도록 팀을 짠다. 서울대·신촌세브란스병원 어린이병동에서 일주일에 4번 수학·과학·미술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서울성모병원 어린이학교에서는 매주 금요일에 미술과 과학을 가르친다.

 “수현이 여기 있나요?” 수업 도중 주사를 든 간호사 선생님이 찾아왔다. 도화지에 열심히 피자 사진을 붙이던 수현(10·여·성서초 2)이는 울상을 지으며 주사를 맞은 뒤 수업을 계속했다. 수현이는 허벅지에 염증이 나서 이틀째 입원 중이다. 세브란스 어린이외과 병동 김희은 간호사는 “수업 덕에 아이들이 덜 지루하게 병원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언니·오빠 선생님들이 오는 키즈 수업 날 더 즐거워해요”라고 말했다.

 키즈유나이티드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은택(23·동덕여대 경영학 3)씨는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평소 교육봉사와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병원에서 만난 아이들이더라도 보통 아이들처럼 대하는 게 중요해요. 어디 아픈지 묻거나 지나치게 도움을 주려고 하면 오히려 상처를 받거든요”라고 말했다.

 이들의 활동은 2005년에 시작됐다. 지금은 부부가 된 김정원(30·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4)씨와 신아람(29·여·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3)씨가 친구 7명을 모아 만들었다. 김씨는 “고등학교 때 눈을 다쳐 입원했는데 병원 생활이 너무 지루했어요. 그때 기억 때문에 대학생이 된 후 병원에 있는 아이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봉사를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당시 이화여대에서 의류직물·아동학을 전공하던 부인 신씨는 “키즈 활동을 하다 보니 아이들 병도 고쳐주고 싶고 더 많은 걸 해주고 싶더라고요. 결국 의학전문대학원에 가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키즈유나이티드는 현재 1000여명의 온라인 회원이 있다. 그 중 80여명이 분기별로 팀을 이뤄 정기 교육봉사활동을 한다. 방학기간에는 벽화봉사활동도 한다. 도안과 밑그림은 미술전공자가 담당하고 페인트 칠은 모두 함께한다. 2005년 여름부터 현재까지 경남 위림초, 강원 거진초 등 지방의 초등학교와 서울 지역 복지관 등에서 벽화봉사활동을 진행했다.

 세브란스 병원학교 한은숙 교무부장은 “키즈는 시험기간 외에는 휴강 없이 수업을 진행해서 어머님들이 좋아해요. 7년간 한 번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봉사하는 모습도 대견스럽죠”라고 말했다.

 지난해 2월부터 세브란스병원에서 봉사를 한 이지은(25·여·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디자인 4)씨는 키즈 봉사를 하며 교육에 더욱 관심을 갖게 돼 숙명여대 교육대학원에서 미술교육을 공부하기로 했다. “마음이 밝아지면 병도 빨리 낫는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이 즐겁게 수업하며 마음도 몸도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글=윤새별 행복동행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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