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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당할라" 영화 보고 왜들 이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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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범죄와의 전쟁’ 주연 하정우(왼쪽)·최민식.

검사는 “내가 깡패라면 넌 그냥 깡패”라며 피의자를 사정없이 폭행한다. 검사 출신 선배 변호사는 후배 검사와 피의자의 술자리를 주선한다. 또 다른 검사는 피의자에게 ‘황금 두꺼비’를 선물받고 수사를 무마시켜 준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나오는 검사들의 모습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1980~90년대 부산을 무대로 조직폭력배가 이권을 얻기 위해 권력층에 로비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특히 검사를 폭력·폭언을 일삼고 로비에 휘둘리는 등 부정적인 집단으로 그렸다. ‘부러진 화살’에서는 판사가 지탄의 대상이 됐다.

이 영화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명의 관객을 불러모으며 화제로 떠올랐다. 8일 현재 150만 명 선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개봉 후 흥행에 성공한 ‘부러진 화살’과 닮은꼴이다. 영화평론가 정지욱(45)씨는 “사법 권력을 풍자한 것은 공통점”이라면서도 “‘부러진 화살’은 사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고 ‘범죄와의 전쟁’은 허구라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최근 빵집·외식업 분야까지 사업을 벌여 난타당한 재계에 이어 법조계에도 ‘배싱(bashing·때리기)’ 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 평론가는 “최근 영화계에선 인기를 끌기 위해 ‘공공의 적’을 풍자의 소재로 삼는 경우가 늘었다”며 “관객들이 비판을 통해 카타르시스(해방감)를 느낀다고 해서 허구를 사실인 것처럼 포장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본 관객들은 현실 속의 검찰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쏟아내고 있다.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엔 “검사는 머리 좋은 깡패” “부러진 화살과 범죄와의 전쟁 속 공공의 적들” 같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에 대해 90년 당시 서울지검 초대 강력부장으로 실제 범죄와의 전쟁에 앞장섰던 심재륜(68) 전 부산고검장은 “영화는 현실과 달리 시대의 부정적인 요소만을 다뤘다”며 “범죄와의 전쟁 당시 검사들은 일선에서 사명감을 갖고 뛰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으로 ‘공정사회’ 바람을 꼽고 있다. 연세대 황상민(심리학) 교수는 “정의를 부르짖는 검사들의 정의롭지 않은 모습에 더 분노하는 것”이라며 “대중의 공정사회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영화를 찾는 발길이 늘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이 ‘부러진 화살’ 이슈에 뒤늦게 반응해 불신을 키웠다”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조만간 ‘범죄와의 전쟁’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범죄와의 전쟁=1990년 10월 노태우 전 대통령이 발표한 특별선언. 당시 조직폭력 사건 등 강력범죄가 잇따르자 노 전 대통령은 “민생치안을 확립하기 위해 각종 범죄를 소탕하겠다”고 밝혔다. 전쟁 선포 후 2년 만에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범죄가 5.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실적 위주로 무리한 수사·검거에 나섰다는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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