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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울지마 톤즈’ 그 이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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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태열
외교통상부 개발협력대사

남(南)수단에서 꽃피운 고(故) 이태석 신부의 사랑과 헌신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울지마 톤즈’를 보며 두 번 울었다. 한센병 환자의 뭉툭한 발을 감싸줄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샌들’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소외된 자들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에 감동하여 울었고, 그가 떠난 마을에 폐허처럼 버려진 학교와 병원을 보며 살아있는 우리들은 그의 꿈을 이어갈 의지조차 없다는 죄스러운 마음에 또 울었다.

 그런데 그 두 번째 눈물을 씻어줄 뜻깊은 사업이 최근 우리 정부와 KBS, 민간단체의 공동노력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남수단 수도 주바에 이태석 신부 기념 의과대학 병원과 학교, 보건소를 지어주는 ‘울지마 톤즈’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정부는 필요한 자금과 기자재 및 기술, 인력을 제공하고 KBS와 민간단체는 성금 모금과 마을재건 등의 봉사활동을 펼친다. 이 신부가 뿌려 놓은 사랑의 씨앗이 비로소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개발원조의 역사와 경험이 일천한 우리나라가 원조 규모로 선진국들과 경쟁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독특한 개발 경험을 토대로 우리만이 제공할 수 있는 개발협력 모델을 만들어 양보다는 질로 차별화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불과 반세기 만에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유일한 나라다.

 원조의 덫에서 벗어나 개발에 성공한 우리나라만큼 개도국에 희망과 영감을 주는 나라가 또 있을까. 우리의 경험은 미국의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같은 전문가들이 ‘공적개발원조의 바람직한 발전모델’이라고 부를 만큼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그 소중한 자산을 활용하기 위한 창의적 노력을 소홀히 해 왔다.

 이제는 이 분야에서 우리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부가가치가 무엇인지, 그러한 가치를 창출해 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울지마 톤즈’ 사업은 그러한 고민의 작은 결과다. 유·무상 사업과 하드웨어·소프트웨어를 연계하여 ‘두 손으로 주는 겸손하고 따뜻한 원조’를 시행한다는 정책목표가 실천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된다는 데 의의가 있다.

 우리의 개발원조 체제가 유·무상으로 분절화되어 있는 데 따른 여러 가지 문제는 있으나 민관 협력과 국민적 참여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의미 있는 시도다. 다만 남수단의 열악한 교통 인프라를 고려할 때 수도에 위치한 대형병원보다는 마을 단위의 소규모 보건소가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도 있는 만큼 현지 환경에 맞는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양측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얼마 전 시민운동가 한비야씨로부터 “남수단 남자들은 절대 울지 않는데 ‘울지마 톤즈’ 영화에서 이태석 신부를 잃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낮은 자세로 다가가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고통을 함께 나눈 진정성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개발원조도 받는 나라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이 담긴 것이어야 한다. 그들이 빈곤에서 탈출하여 홀로 서는 데 장애요소가 무엇인지 그들의 입장에서 함께 고민하며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는 개도국의 아픔과 고통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해결 방안을 찾는 데 있어서도 선진국보다 더 나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소위 ‘고기 잡는 법’을 더 잘 가르쳐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이태석 신부가 한센인들에게 신겨 주었던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샌들’과 같은 따뜻한 사랑이 담긴 맞춤형 원조,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개발원조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다.

조태열 외교통상부 개발협력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