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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화의 주식 거래 소동, 기준이 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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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 주말 증시를 덮친 한화의 거래정지를 둘러싼 진통은 수많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 한국거래소가 긴급 회의를 통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다”고 서둘러 진화한 것은 시장 충격을 줄이려는 고육책(苦肉策)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과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것은 분명하다. 이미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라는 비난과 대기업 특혜 시비가 불붙는 조짐이다. 차제에 거래소는 매매 정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부터 내놓아야 할 것이다.

 한화는 10대 그룹 중 하나다. 이번 횡령 혐의 건(件)도 지난해 1월 기소된 해묵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조회 공시를 요구하지 않았다. 지난 3일 검찰이 구형을 내리고, 장이 끝난 후 한화가 899억원의 배임 혐의를 공시하자 거래소는 뒤늦게 “실질심사 대상인지를 가리기 위해 6일부터 매매거래를 정지한다”고 부산을 떨었다. 그러고는 보통 2주씩 걸리던 검토기한을 이틀로 단축해 일요일인 5일 전격적으로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다”고 판정했다. 사실상 한화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셈이다.

 한화의 횡령 혐의액은 자기자본의 3.88%에 그쳐 애당초 상장 폐지를 거론하기는 무리다. 또 거래소는 “한화 측이 경영투명성을 제고하는 신뢰성 있는 개선방안과, 한층 강화된 내부통제 장치를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많은 주식투자자들이 공시 지연에 대한 한화의 “업무상 착오”라는 해명이나, 거래소의 “증시 안정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라는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대기업이 이런 식으로 다 빠져나가면 법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며 불만이 만연하다.

 최근 우리 사회의 ‘대기업 때리기’ 밑바닥에는 법 앞의 평등과 공정(公正)에 대한 요구가 깔려 있다. 코스닥에선 지난해 횡령·배임 혐의에 얽힌 11개 기업이 퇴출됐다. 물론 죄질이 나빴고, 자기자본에 비해 횡령 혐의액 비중도 컸다. 거래소에서도 지난해 횡령·배임 혐의가 발생한 일부 업체가 상장폐지는 면했지만 상당 기간 주식 거래를 정지당했다. 이에 비해 한화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면죄부(免罪符)를 받은 것처럼 비칠 수밖에 없다. 이러니 다른 상장폐지 종목에서 손해를 본 소액투자자들이 “거래소의 이번 결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자”며 들끓고 있고, 우리 사회 일각에서 여기에 동정하는 분위기가 일고 있는 것이다.

 거래소는 대기업 특혜시비와 불필요한 오해를 차단하기 위해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부터 세워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대기업 범죄에 대해 “경제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며 어물쩍 넘어가기 어려운 시대다.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동일한 절차를 밟아 똑같이 처벌해야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눈높이도 세계화된 지 오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외국의 거대 기업들이 범죄행위로 쓰러져 갔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 국내 금융감독 당국의 주관적 잣대로 고무줄 판단을 내리던 시절은 지나갔다. 오히려 대기업 때리기만 자극하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