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인사이트] 양치기 소년이 된 ‘배추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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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권혁주
유통팀장

배추 값 안정을 책임진 정부의 ‘배추국장’이 요즘 동분서주하고 있다. 올 봄배추 가격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다. 정부가 조사해 보니 지난해 봄보다 배추 수확량이 25%가량 줄 것 같다는 분석이 나왔다고 한다. 지난해 김장철에 배추 값이 떨어져 손해를 본 농가들이 봄배추 농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대로라면 봄배추 값이 뛰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래서 다급해진 정부는 지난 설 직전 ‘산지유통인’들을 비롯한 배추 유통·판매 관계자들을 불러모았다. 산지유통인이란 농민들에게서 직접 농산물을 사들이는 1차 수집상을 말한다.

 정부는 이들을 설득했다. “물가가 중요하다. 봄배추 값을 미리 안정시켜야 한다. 필요하면 자금을 지원하겠다. 농민들에게 ‘수확철에 사들이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금이라도 배추를 많이 심도록 해달라.”

 산지유통인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유가 있다. 지난해 정부의 배추 값 안정 정책에 크게 덴 적이 있다.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정부는 김장철 배추 값이 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여름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가을배추 작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도 대책 마련에 나서 계약재배를 독려했다. 정부는 당시 계약재배 융자금 400억원을 풀었다.

 그런데 웬걸. 비가 그치고 좋은 날씨가 이어져 풍년이 들었다. 여기에 400억원을 풀어 만들어낸 계약재배 물량까지 쏟아졌다. 그 결과 김장철이었던 지난해 11월, 배추 상품(上品) 포기당 가격은 전년의 3분의 1 수준인 1200원으로 내려앉았다. ‘배추 폭락 파동’의 전모다.

 이 과정에서 산지유통인들은 큰 손해를 봤다. 배추 값이 예년 수준보다 강세일 것이라는 전망에 맞춰 사전 구매계약을 했다가 손실을 입었다. 이런 경험이 생생한데 ‘봄배추 가격 안정에 협조해 달라’는 정부의 요청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아니 산지유통인들은 아예 정부를 이솝 우화의 ‘양치기 소년’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다. 산지유통인들의 생각은 한마디로 ‘배추 값이 뛴다는 말을 또 믿으란 말이냐’다.

 예측이 빗나가는 데 대해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워낙 날씨가 변화무쌍해진 데다 60만이나 되는 배추농가가 배추를 언제 얼마나 심을지 일일이 파악하는 게 불가능해 예상 수확량을 정밀하게 계산할 수 없다는 해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농산물 수확량 예측을 더 정확히 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면 세 가지 해로움이 생긴다. 때때로 가격이 급등해 생기는 소비자의 괴로움, 폭락할 때 농민의 한숨,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어떻게든 예측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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