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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책이 내 머리를 친다, 세상의 모든 것이 말을 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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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새해도 벌써 2월 입니다. 신년 계획이 무엇이든 책 읽기는 모든 일의 바탕을 다지는 일입니다. 독서에서도 편식은 곤란하겠죠.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으로 전공이나 직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서평집 세 권을 추천합니다. 주제는 ‘섞으면 아름답다’로 정했습니다. 광고 전문가·경제학자·과학자가 각각 다양한 독서 경험을 털어놓은 이 책들에서 삶을 풍성하게 하는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책은 도끼다
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348쪽, 1만6000원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인의 독법(讀法), 말하자면 남의 책 읽기를 따라가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속독에 가깝게 책을 읽는 나와 달리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눌러 읽는 편’이라고 했던 저자의 독법은 등짝을 때리는 듯하다.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라는 말에는 적잖게 찔렸다.

 그것보다 더 당혹스러운 건 ‘도대체 난 뭘 읽었던가’란 생각이다. 같은 책을 봤는데 내 눈에는 들지 않았던 수많은 문장, 그 속에 담겼던 의미를 흘려 보냈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래서 꽂아뒀던 책을 다시 폈다. 읽지 않은 책은 사봐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모두 카피라이터인 저자의 예민한 촉수가 기민하게 움직인 결과다.

 저자는 말한다. 차이를 만든 건 창의력, 즉 통찰이라고.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다. 하지만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창의적인 것이란 말이다. 사람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책이다.

 설명은 이렇다. “책을 읽고 나면 그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레이더에 걸립니다. 회로가 재설정되는 것이죠.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은 촉수가 민감해집니다.” 삶을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의 회로를 재설정해준 작가는 물론 많다. 판화가 이철수는 평소에 지나쳤던 걸 보게 해줬다. 덕분에 이철수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광고도 탄생했다. 저자가 ‘들여다보기 선수’라고 칭한 소설가 김훈은 허투루 흘려 보냈던 꽃과 나무, 하다못해 냉이된장국을 놓고 벌어진 된장과 냉이, 인간의 삼각 치정관계까지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김훈은 “글쓰기는 자연 현상에 대한 인문적인 말 걸기”라고 했다. 때문에 세상의 흐름을 놓치고 싶지 않은 저자에게는 책이 인생의 등대인 셈이다. 하지만 ‘인문적인 말 걸기’는 자연 현상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시간이란 시련을 견뎌낸 고전에는 사랑과 인간 관계에 대한 빛나는 통찰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는 마치 ‘인생의 지도’와 같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전인미답의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 사람이 겪어나갈 사고의 혼돈과 인생의 질곡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과 행동이라는 걸 보여주는 책”이라고 저자는 추켜세운다.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저자가 인용한 프란츠 카프카 『변신』의 한 구절이다. 그는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웠던 도끼 자국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책은 머릿속 도끼질의 흔적을 공유하고 싶은 저자의 말 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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