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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마라톤? 그 괴로운 운동을…" 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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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린시절 손은경씨(왼쪽사진 가운데)가 언니 은주씨, 고 손기정씨와 찍은 사진. 오른쪽 사진은 2일 만난 은경씨. [김진경 기자]

올해는 ‘마라톤 영웅’ 고(故) 손기정 선생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의 손녀 손은경(35·모리빌딩주식회사)씨를 지난 2일 서울에서 만났다. 재일교포인 손씨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부동산 사업 컨설팅을 맡고 있다. 게이오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커리어 우먼이자 네 번의 풀코스를 거뜬히 소화한 아마추어 마라토너다.

 손씨가 마라톤에 처음 도전한 것은 2003년이었다. 그해 3월 동아국제마라톤에 출전해 마스터스(일반인 마니아) 부문 풀코스를 4시간32분에 완주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개월 만이었다. 살아 생전 손옹은 마라톤을 하겠다는 손녀에게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괴로운 운동은 하지 말라”고 반대하셨다. 그래도 고집스레 훈련을 이어온 손씨는 첫 도전에서 완주했다. 이듬해에도 서울 월드컵공원에서 열린 손기정배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 코스를 뛰었다.

 손씨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재일교포 작가인 친구 유미리(44)씨 때문이었다. 유씨는 1997년 『가족 시네마』로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유씨는 마라토너를 다룬 소설을 쓰기 위해 마라톤에 도전했고, 친구를 응원하러 갔던 손씨도 마라톤에 매료됐다. 손씨는 “마라톤을 하면 할아버지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와 한국어로 소통하지 못한 아쉬움을 채우고 싶었다”고 했다.

 손씨에게 할아버지 손기정은 삶의 축이 되는 분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다. 그때 한국어도 배우기 시작했다”며 할아버지로 인해 큰 흔들림 없이 그 시기를 지나올 수 있었다고 했다. 마라톤은 할아버지와 손녀를 이어주는 끈과도 같았다. 손씨는 “마라톤을 뛰며 러너의 고독을 느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같은 감정을 공유했을 거라 생각하니 나와 할아버지가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손씨는 중학교 시절 역사 교과서에 할아버지 얘기가 실렸던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조선의 신문(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보)에서 할아버지 사진을 쓰며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사건이 책에 나왔다. 역사 교과서에도 나왔고 영어 교과서에도 실려 있었다”고 했다. 이어 “할아버지께서 당신이 괴로웠던 시절에 관해선 손녀들에게 말씀해 주려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신문 기사나 TV 뉴스 등을 보며 얼핏 알고 있던 게 다였는데, 교과서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인간’ 손기정의 모습도 들려줬다. 손녀의 기억에 할아버지는 ‘멋쟁이 신사’였다. 손기정 선생은 항상 재킷과 어울리는 모자를 쓰셨고, 머플러로 포인트를 줬다고 한다. 손씨는 “할아버지가 어린 나를 도쿄 신주쿠의 백화점으로 데려가 정장을 사주신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또 “할아버지는 모든 음식을 다 잘 드셨지만 ‘나토(일본식 청국장)’만은 못 드셨다. 일식을 드실 때도 꼭 김치를 찾으시곤 했다”고 덧붙였다.

 손씨는 “지난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할아버지의 이름이 ‘손기정’으로 바뀐 것을 알고 있다. 살아계실 때 할아버지는 늘 ‘손기정’으로 한글 서명을 하셨다. 국적이 바뀌진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또 “일본에선 할아버지의 모교인 메이지 법과대학에서 손기정 탄생 100주년 기념 행사를 마련 중”이라며 “한국에서도 할아버지를 기리는 행사가 열렸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글=손애성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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