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그녀를 쏘았다

중앙일보

입력

1901년 2월 17일 저녁 9시경, 파리 클리시(Clichy)의 어느 한 카페. 싸늘하고 비정한 바람이 불길한 음모처럼 음흉한 이빨을 드러냈다. 거리는 깡깡 얼었다. 숨죽인 거리의 침묵을, 날카로운 도끼날로 찢는 최소한 두 발의 총성이 있었다. 준수한 용모의 한 젊은이가 권총의 탄환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짓이겼다. 카를로스 카사헤마스. 시인이자 화가, 피카소의 단짝이었다.

그는 자신을 쏘기 전에 앞에 앉은 여성의 가슴에 먼저 방아쇠를 당겼다. '제르멘느'로 잘 알려진 로르 가르갈로, 그녀는 카사헤마스의 연인이었다. 그녀가 쓰러지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자신마저 지상에서 떠나 보냈다. 날카로운 금속은 그의 오른쪽 이마를 신속하게 관통했다. 솟구치는 피를 막을 새도 없이 그는 즉사했다.

성불구였던 카사헤마스. 그는 지상에선 불가능한 그녀와의 사랑을 하늘에서 가능하도록 조치했다. 이것만이 그녀를 사랑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는 거듭 다짐했다. 그녀와 함께라면 그 어떤 참혹한 운명도 나의 의지를 꺾진 못하리라고 카사헤마스는 절규했다. 그러나 그녀는 총알의 위협으로부터 가까스로 빗겨났다. 운명은 아직 그녀와 무관했다. 순결한 청년의 영혼은, 따라서 그렇게 홀로 지상을 떠났다. 그해 봄, 피카소는 스무번째 생일을 맞았다.

1900년 10월, 피카소는 시인이자 화가였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를 처음 만났다. 카사헤마스는 20세, 피카소는 19세였다. 그때 피카소는 예술가, 무정부주의자, 시인 사이에서 중심이었다. 그는 카페를 주도하고 장악하는 카리스마적 풍모를 이미 전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첫 만남에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파리로 진격했다.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촌뜨기 피카소, 그리고 카사헤마스는 몽마르뜨르 언덕에 빈한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들은 곤핍했지만 파리는 아름다웠고 찬란했다. 누구도 파리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리라. 피카소는 파리의 빛에 완전히 굴복했다. 복종했다. 그해 가을은 그렇게 황금빛으로 타올랐다. 피카소는 자신의 성공을 예감했다.

피카소는 파리의 미술관을 미친 듯이 순회하며 고전주의, 낭만주의, 그리고 인상주의와 만났다. 이외에도 이집트의 예술품, 그리고 일본 판화 등에도 날카로운 촉수를 들이대며 탐욕스럽게 관찰하고 또 관찰했다. 마침 파리는 만국 박람회로 전역이 축제로 비등했다. 피카소는 전적으로 행복했다. 몇 달 후 그들은 바로셀로나로 돌아왔고 환영받았다. 그러나 그의 정신은 완벽하게 파리에 속했다. 바야흐로 파리의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파리의 정복은, 그러나 카사헤마스의 총격 사건으로 난관에 봉착한다. 피카소는 충격을 받았다. 단짝이었던 카사헤마스의 자살은 그를 절망의 계곡으로 인도했다. 피카소는 1901년부터 카사헤마스의 비극적인 자살을 소재로 한 그림을 각혈처럼 토해냈다. 이 시기 그의 청색은 깊은 절망의 심연을 핵심까지 탁월하게 잡아냈다. 그 고통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1904년 경 비로소 카사헤마스의 죽음으로부터 점차 탈피하여 심리적인 안정을 찾았다.

피카소의〈인생〉은 그것을 증명한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창백한 청회색이다. 청회색은 검고 탁한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지배되는 것 같다. 분위기는 극도로 침울하다. 화면은 왼쪽에서 포옹하고 있는 연인, 오른쪽에서 아기를 안은 여성으로 크게 분할된다. 그 경계를 뒤쪽의 미완성인 두 스케치가 상하로 구획한다. 두 스케치의 내용은 칠통의 마음을 가슴에 품고 좌절하는 인물들에 관한 것이다. 이 수수께끼 같은 그림이 카사헤마스와 관계있다면 그것은 왜인가? 그것은 포옹하는 연인 중 남자는 카사헤마스이고 여성은 제르멘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기를 안고 있는 여성은 대체 누구인가.

피카소가 특별히 이 그림의 제목을 〈인생〉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인가? 어쩌면 질문의 한 단서를 이와 유사한 모티프의〈포옹〉이 제공할 지 모른다. 〈포옹〉은 침울하게 포옹하는 남녀를 그린 것이다. 더구나 〈포옹〉의 남녀는 〈인생〉의 남녀와 닮아 있다. 임신한 여성은 제르멘느이고 그녀가 포옹한 남성은 카사헤마스를 잃고 그녀가 결혼한 라몽 피쇼이다. 〈포옹〉과 〈인생〉의 제작은 거의 동시적이다. 그렇다면 두 그림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피카소는 〈인생〉을 완성하기 위해 밑그림만 여러 점을 남길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초기의 스케치에서 제르멘느가 포옹한 남성은 카사헤마스가 아니라 피카소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피카소는 당시 최고의 아름다움을 뽐낸 제르멘느와 내연의 관계였던 것일까. 의혹은 제르멘느, 카사헤마스, 피카소, 피쇼, 아기를 안은 여성(그녀는 카사헤마스의 어머니로 밝혀졌다)들이 얽힌 그물망을 풀어야 그 속살을 보여줄 것만 같다.

카사헤마스는 피카소와 제르멘느의 사랑을 이미 눈치채고 상심했을지도 모른다. 더해서 성불구라는 신체적 콤플렉스는 그를 극도의 자학상태로 몰고 갔으리라. 카사헤마스의 자살 이후에도 그들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포옹〉에서 임신한 제르멘느가 남편 피쇼와 포옹한 채 흐느끼는 것도 피카소와 제르멘느와의 깊은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아이의 아빠는 누구일까. 여러 가지 정황이 이 그림을 더욱 미궁으로 몰고 간다. 아마도 피카소는 카사헤마스와 피쇼에 대한 죄책감의 악령에 사로잡혔고, 카사헤마스의 자살 역시 자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인생〉에서 젊은 연인들은 불행한 사랑을, 그리고 아이를 안은 어머니는 카사헤마스의 불가능한 사랑을 측은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룩한 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그녀가 아기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천상의 마리아를 연상케 한다. 카사헤마스는 집게 손가락으로 아기를 가리키고 있다. 피카소는 불행한 사랑에 의해 희생당한 카사헤마스를, 인류를 위해 희생한 예수와 비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즉, 이 그림을 통해서 피카소는 카사헤마스의 불행한 죽음을 위로하고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용훈 (yhcho@sugok.chongj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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