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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악보의 경제학 … 대여료만 200만원 … 살 수 없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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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베토벤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프로코피예프의 ‘알렉산드르 넵스키’를 연주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해 12월 악보를 빌려왔다. 마스터피스 시리즈의 첫 순서로 열리는 이날 공연에선 BBC 심포니 음악감독을 지낸 레너드 슬래트킨(Leonard Slatkin)이 객원 지휘자로 나설 예정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객원지휘자로 모셔올 정도로 중요한 무대지만 서울시향이 대여 악보를 무대에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출판사 부지앤혹스(Boosey and Hawkes)에서 악보를 판매하지 않고 대여만 하기 때문이다. 부지앤혹스는 ‘알렉산드르 넵스키’ 악보를 취급하는 유일한 출판사다.

칼무스 출판사가 펴낸 베토벤 교향곡 1번 악보 중 제1바이올린 파트보(사진 위). 두 번째 마디, 첫째 음과 둘째 음 사이에 이음표가 있다. 브라이트코프출판사가 펴낸 최신판 악보에는 이음줄이 빠
져있다. 음악에 대한 해석과 오류가 수정된 브라이트코프판 악보가 칼무스판에 비해 더 비싸다.

 클래식 음악의 역사만큼 악보의 역사도 깊다. 악보 한 장에도 ‘경제학’이 숨어 있다. 악보 출판사는 저작권과 인기도에 따라 판매 및 대여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회 동안 서울시향은 교향곡 1번을 빼놓고 나머지 곡들은 전부 대여 악보로 연주했다. 지난해 12월 연주한 말러의 교향곡 8번인 ‘천인교향곡’ 연주를 앞두고 서울시향은 유니버설 출판사에서 악보 460여 권을 빌렸다. 대략 1부당 1만3000원 정도 지불했다. 말러 8번 합창단 악보 가격은 대략 5만원 정도. 4번 이상 대여하면 출판사 입장에선 남는 장사다.

 서울시향 같은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하는 악보는 각 파트별 모든 악기의 악보가 표시된 총보(總譜)와 바이올린·비올라 등 각 악기 연주자들이 보는 파트보로 나뉜다.

동네 피아노 교습소에서 구경했을 법한 피아노 악보와 달리 각 악기들의 연주에 맞춰 제작돼 피아노 악보와 달리 복잡하다. 서울시향은 프로코피예프 악보 대여료와 운송료로 200여 만원을 지불했다. 오케스트라용 악보 65부와 합창단용 악보 100부가 대여 품목이다.

연주가 끝나면 악보를 다시 반납해야 하는 조건이다. 두 명이 하나의 악보를 나눠서 보는 바이올린이나 비올라 파트 연주자들이 개인 연습을 할 때는 악보를 복사해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복사한 악보는 무대에 올릴 수 없다. 물론 악보 반납시 복사한 것들은 폐기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규모도 가격 결정에 중요한 요소다. 이른바 가격차별화다. 높은 가격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게는 비싼 가격을 받지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게는 프로 악단보다는 싼 가격을 받는다. 대여 가격은 출판사가 직접 결정한다.

 서울시향 김진근 악보전문위원은 “출판사들은 인기가 많은 악보의 대여 가격을 높이기도 하고 대여 악보를 다시 판매용으로 돌리기도 하고 일부 악보는 판매를 하다가 대여로 돌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악보는 판매용으로 됐다가 최근 인기를 끌자 출판사가 다시 대여로 돌렸다.

 김 전문위원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음악 시장을 모니터링 할 수 있어 인기가 많은 곡들은 (일부러) 대여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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