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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앞 옷가게 주인 30년만에…세계가 '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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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

박성수(59) 이랜드그룹 회장이 거침없는 인수합병(M&A)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04년에 뉴코아, 2006년엔 하일라콘도를 인수해 그룹 덩치를 불리더니 지난해 말에는 작고한 세기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애칭 리즈)의 33.19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를 881만8500달러(약 100억원)에 낙찰받아 전 세계에 화제를 뿌렸다. 이번에는 피터 오말리(75) 전 LA다저스 구단주와 컨소시엄을 이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명문 구단 LA다저스 인수전(예상가격 1조7000억원)에 뛰어들었다.
▶<본지 1월 31일자 2면>

 이뿐 아니다. 이랜드에 따르면 박 회장은 그룹 내부에 “요즘 같은 세계 경제위기는 싸게 나온 대형 기업을 M&A할 기회”라며 적절한 대상이 없는지 철저히 훑어볼 것을 지시했다. 이랜드가 30여 년 전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작은 옷가게로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광주일고를 나온 박 회장은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할 무렵 ‘근무력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병이다. 수년간 투병 끝에 완치는 됐지만 취직할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이대 앞의 옷가게 ‘잉글랜드’였다.

장사가 잘 돼 패션사업으로 발을 뻗쳤다. 브렌따노·헌트·언더우드처럼 내놓는 브랜드들이 거의 모두 히트했다. 93년에 브랜드 판매 가맹점이 2000개를 넘었다.

 사업이 커지면서 M&A에 눈을 떴다. 96년 설악산 켄싱턴호텔(옛 뉴설악호텔)을 인수한 게 필두였다. 이후 하일라콘도, 뉴코아, 한국콘도(2009년), 우방랜드(2010년)를 잇따라 사들였다. 올 1월 하순에는 쌍용건설 인수의향서를 제출했다. 해외 M&A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인 만다리나 덕을 끌어안았고, 올 초에는 남태평양 사이판의 PIC(퍼시픽 아일랜즈 클럽) 리조트 인수 본계약을 맺었다.

 이랜드그룹에 따르면 이 같은 M&A는 “성장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박 회장의 지론에 의한 것이다.

이랜드의 M&A에는 또 철저한 원칙이 있다. 첫째는 재무구조에 무리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랜드는 패션·유통 같은 ‘현금 장사’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바탕으로 M&A를 하고 있다. 최근 들어 활발한 M&A 역시 실탄이 넉넉해 재무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게 이랜드의 설명이다. 이랜드그룹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5500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2006년 한국까르푸를 1조7500억원에 인수했다가 2년 뒤 홈플러스에 2조3000억원에 팔면서 5500억원 차익을 남겼고, 지난해 말에는 킴스클럽마트를 2000억원에 매각해 현금을 챙겼다.

 이랜드월드(패션)·이랜드리테일(유통) 같은 주력 계열사들이 비상장사여서 배당 압박에서 자유롭다는 점 역시 현금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현대증권의 방종욱 채권담당 연구원은 “특히 이랜드의 중국사업이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어 최근의 M&A는 넉넉히 감당할 정도”라고 진단했다. 이랜드는 중국에서 티니위니·스코필드 같은 패션 직영점 5000여 개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내 매출은 2010년 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1조6000억원으로 1년 만에 33% 성장했다.

 이랜드의 둘째 M&A 원칙은 ‘의(衣)·식(食)·주(住)·락(樂·여가생활) 산업이어야 한다’는 것.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목걸이 역시 이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국내에 테마파크를 조성해 여기에 전시함으로써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려는 목적이다.

 LA다저스도 ‘락’에 속하기는 한다. 그러나 LA다저스에 손을 뻗친 속내는 조금 다르다. “미국 내 브랜드 인지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라는 게 이랜드의 설명이다. 이랜드는 패션 브랜드 ‘후아유’를 99년 미국에서 선보였으나 아직 주목을 끌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LA다저스 인수에 성공하면 일거에 브랜드 이름을 미국 전역에 알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왕성한 식욕을 보이고 있는 이랜드의 다음번 M&A 대상은 어디일까.

이랜드 측은 일단 “지금 당장 논의가 오가는 곳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지금이 글로벌 대형기업 M&A 기회”라고 한 박 회장의 말에 따라 적절한 물건이 시장에 나오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그룹 고위 관계자는 “대형 M&A 기회가 오면 자금 마련을 위해 비상장회사의 지분을 매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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