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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오페라와 사랑에 빠져 살아온 5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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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세월 참 빨라요. 노래하고 제자 가르치며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벌써 황혼녘입니다. 보잘 것 없는 이야기지만 후배들을 위해 뭔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책을 냈어요.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하는 마음도 함께 담았습니다."

원로 성악가 이인영(서울대 명예교수.예술원 음악분과 위원장.사진)씨가 희수(喜壽.77세)를 맞아 자서전 '노래와 사랑 속에서'(정문사)를 냈다. 그동안 잡지 등에 기고한 수필에다 1년간 하루 3시간씩 집필한 원고를 보탠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가 선창하는 '잘 살아보세'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일화도 실려 있다.

이 교수는 광복 이후 일본에 유학한 몇 안되는 음악인 중 한 명이다. 도쿄예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26세의 나이로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마스네 오페라 '타이스' 공연에서 베이스 주역인 수도원장 역을 맡았다. 1959년 귀국 후에도 71년까지 후지와라 오페라단에 고정 출연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에는 일본 유학 비자를 받는 게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고향인 부산 다대포에서 작은 통통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규슈(九州) 에 밀입국한 뒤 김경식이라는 이름의 가짜 신분증을 얻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는 베이스 김경식으로 통했지요. 가짜 이름이 예명이 돼버린 거죠."

일본에서 '잘 나가던' 그가 고국행을 결심한 것은 무언의 질시 때문이었다. 도쿄에서 계속 활동하려면 일본식 이름으로 바꿔 일본인 행세를 해야 했다.

이 교수는 59년 명동 시공관에서 서울대 음대가 주최한 오페라 '라보엠'에서 철학자 콜리네 역으로 국내 무대에 데뷔했다. 당시 한국음악가협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현제명씨가 '김경식과 이인영은 동일 인물'이라는 내용의 증명서를 써주기도 했다.

"음악가는 언제라도 무대에 설 수 있게 항상 긴장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 관리가 철저해야죠. 어릴 때부터 신체 콤플렉스와 남모르게 싸워 왔기 때문에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어릴 때 소아마비로 자주 넘어졌던 그는 혼신의 노력 덕분에 오페라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80년대 초 발목 관절 수술 이후에는 보행이 불편해 목발을 사용하고 있다.

그는 푸근하고 윤기있는 발성으로 60~70년대 국내 오페라 무대를 주름잡으면서 국내에서만 30여 편의 오페라에 출연하고 15편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60년 서울대 음대에 첫 출강한 이후 94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테너 박인수(전 서울대 교수).바리톤 김성길(서울대 교수).조창연(추계예대 교수).전봉구(경원대 교수), 베이스 김원경(계명대 교수).양희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사무엘 윤(쾰른 오페라 주역가수).나영수(울산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씨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lully@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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