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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놀랐다 … 흑백 무성영화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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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영화 ‘아티스트’의 한 장면. 1920년대 무성영화의 최고 스타 조지(장 뒤자르댕)의 시사회장에서 배우 지망생 페피(베레니스 베조)가 인파에 떠밀려 얼떨결에 조지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영화사 진진]

이건 분명 도발이다. 아니 반란(反亂)이다.

 3D로 모자라 4D까지 온갖 영상기술이 만개한 디지털 세상에 흑백 무성(無聲)영화라니.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 같다. 프랑스 무성영화 ‘아티스트’(미셸 아자나비슈스 감독) 얘기다. 하지만 ‘시대착오적’ ‘퇴행성’ 등등 트집을 잡으려던 이들도 영화를 보고 나면 고개를 주억거리고 만다.

 ‘아티스트’는 지난해 칸영화제(남우주연상)부터 최근 골든글로브(최우수작품상·남우주연상·음악상)까지 숱한 상을 거머쥐었다. 다음 달 2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극장에서 열리는 제8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대작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계가 작지만 뛰어난 흑백영화에 허를 찔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아티스트’가 낳은 스타 견공(犬公) 어기가 15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트로피에 발을 올려놓고 있다. [AP=연합뉴스]

 영화는 1920년대 할리우드 무성영화 시대의 극장 풍경으로 시작된다. 입만 뻐끔거리는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 두 박자 정도 느린 자막, 화면을 따라가기 급급한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은 ‘아바타’류의 화려한 볼거리와 사운드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낯설게 다가온다. 오죽하면 영국 리버풀에서 한 20대 여성 관객이 영화 시작 10분 만에 “대사가 없어 못 보겠다”며 환불을 요구했을까. 그런데 영화의 스토리에 빠져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아티스트’는 1920년대 무성영화의 최고스타 조지 발렌타인(장 뒤자르댕)의 좌절과 재기, 그리고 사랑을 그렸다. 조지는 우연한 기회에 당찬 배우 지망생 페피 밀러(베레니스 베조)와 만나고, 페피는 그를 흠모한다. 조지의 ‘결정적’인 조언으로 페피는 주연 배우로 성장, 유성(有聲)영화 시대의 스타가 된다. “유성영화는 진지한 예술이 아니다”며 시대 흐름을 거부한 조지는 나락으로 떨어진 뒤 페피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아자나비슈스 감독은 구시대 유물 취급 받던 무성영화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현란한 기술과 색감, 번지르르한 대사가 없어도 스토리의 힘으로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흑백 음영의 질감과 음악, 최소한의 자막 만으로 채워진 화면은 관객들이 눈이 아닌, 마음으로 영화를 보게 만든다. 오케스트라 음악도 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아자나비슈스 감독은 “존경하는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출발점이 무성영화였기 때문에 예전부터 무성영화를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티스트’는 겉으로는 옛 무성영화에 대한 오마주(경의)다. 나아가 그런 무성영화 위에 유쾌한 유머코드와 기발한 화면구도를 얹어 ‘21세기판 무성영화’를 새롭게 빚어냈다.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가 대담하다. 성공과 좌절, 상반된 감정을 능란하게 표현해낸 뒤자르댕의 연기도 일품이다.

 흥미로운 팁 하나. 뒤자르댕의 애견 역을 맡은 견공(犬公) 배우 어기(Uggie)의 재치 있는 모습을 눈여겨볼 것. 올해 10살(사람으로 치면 70대 중반)이 된 어기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외신들은 어기가 이번 역을 끝으로 스크린에서 은퇴한다며 아쉬움을 표할 정도다. 다음 달 1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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