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반에도 왕따 있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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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연이어 일어난 청소년 자살이 학교폭력 때문이라는 기사를 보고 중학생인 아이에게 물었다. “너희 반에도 왕따가 있니?”라는 질문에 “없지는 않지만 심하지도 않다”는 쿨한 답이 돌아왔다. 이럴 줄 알면서도 물었던 건 “혹시 네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니냐”는 우회적 질문이었는데 말이다.

아이는 오랫동안 외톨이였다. 학교에 갔다가 아이가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 빙빙 돌고 있는 모습을 처음 봤을 때 참으로 황망했다. 모두들 나가서 뛰노는 점심시간에도 아이만 홀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점심시간에 밥을 혼자 먹는다는 걸 알았을 때 마치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왜 남자아이들은 친구를 위협하는 걸 자랑스러워할까. 왜 여자아이들은 친한 친구를 은근히 괴롭히는 걸까. 왜 집단에서 어떤 아이는 리더고, 다른 아이는 추종자 노릇을 하는 걸까. 왜 어떤 아이는 무리에 끼지 못하는 걸까. 나아가 학교생활기록부에 가해 학생의 폭력 사실을 기재해 대학입시 등에서 불이익을 당하게 하면 따돌림과 폭력이 학교에서 사라질까.

개인 관심사를 직업적 관심사로 연결하는 건 내 오랜 버릇이다. 그래서 그와 관련된 책들을 찾아봤다. 대중적인 어법으로 쉽게 쓰인 『아이의 신호등』이나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은 오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이의 신호등』은 발달심리학자인 수전 엥겔이 우정·인성·성공 등 6가지 영역에서 아이의 징후를 분석하고 부모의 대응법을 소개한 책이다.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고민한다면 앞부분에 소개된 ‘우정’에 관한 글을 읽으면 좋겠다.

또래집단의 실체에 대해 좀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이 숨겨진 삶』이 적절하다. 사회성의 근원부터 집단 생리, 우정의 역할, 나아가 학교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총체적으로 다루었다. 부모들은 아이에게 뭔가 문제가 터지면 “내 아이는 착한데 나쁜 아이들의 꼬임에 빠졌다”고 말하곤 한다. 책은 이런 오류를 깨는 것으로 시작한다. 따돌림이나 폭행을 저지르는 가해 집단은 의외로 평범한 아이들이다.

청소년들이 집단에 들어가는 건 강제가 아니다. 집단의 매력에 끌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다. 혼자 외톨이로 지내기보다는 집단에 소속되길 원하니까. 집단이란 속성상 구성원들은 아군과 적군으로 편가르기를 한다. 동물들이 위계질서를 세우듯 집단 내에 위와 아래라는 계급을 만들고, 리더와 추종자라는 역할 분담을 한다. 부모가 아는 아이와 집단 내의 아이는 사뭇 다르다. 집단으로 모인 아이들은 비도덕적인 일을 서슴지 않는다. 어느 연구에 따르면 집단에 속한 청소년 가운데 불과 4%만 내면의 양심에 따라 도덕적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는 집단의 생리를 이해하는 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때린 아이는 가해자고, 맞은 아이는 피해자’라는 생각과 판단만으론, 피해자가 자기보다 더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집단 따돌림과 폭력의 악순환 구조를 해결하지 못한다. 교사와 부모는 이들 사이의 나쁜 관계를 좋은 관계로 바꿔 주고, 인기 있는 아이와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통 과제를 만들어주는 것과 같은 입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학교폭력 문제가 생기면 언론매체들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문제를 단순화한다. 부모들은 내 아이는 아닐 거라며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부모가 그저 “너희 반에도 왕따가 있니?”라고 물어선 절대로 진실을 알 수 없다. 아이의 문제는 간섭이 아니라 이해를 통해 실마리를 풀 수 있다. 그래서 부모 노릇이 어려운 것 같다. 아이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공부가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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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 홍익대에서 독일문학을 공부한 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책 읽기는 게임이야』『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등을 썼다.

한미화 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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