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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작가, 한국 번역가에 "문체 바꾸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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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근 기자]

“오르한 파묵의 소설 『새로운 인생』은 이렇게 시작하죠.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이게 바로 제 얘기이기도 합니다.” 국내 최초의 터키문학 박사이자 번역가 이난아(46)씨는 터키 유학 시절 파묵의 작품을 처음 접한 충격을 이렇게 돌이켰다. 그는 1990년대 말 『새로운 인생』을 시작으로 파묵의 작품을 국내에 소개해왔다. 『내 이름은 빨강』 『순수 박물관』 등 지금까지 국내에 출간된 파묵의 작품 8편을 도맡아 번역했다. 덕분에 세계문학계에서 낯선 나라였던 터키의 작가 파묵은 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 전부터 한국 독자들과 친근해질 수 있었다. 파묵에 대한 논문 10여 편을 발표한 연구자이자, 이 세계적 작가가 세계적 명성을 떨치기 전부터 10여 년간 교류해온 이씨를 만났다. 해마다 두 차례 터키를 찾아 파묵과 만나온 그는 설 연휴를 앞두고 터키 여행을 준비 중이었다.

●터키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고향(전남 고흥)의 부모님과 떨어져 형제들과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친구가 많지 않던 터라 그때부터 책을 참 많이 읽었죠. 자연히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죠. 그런데 어느 날 먼 삼촌이 터키에 무관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까지 ‘터키’라면 세계사에서 조금 들어본 게 전부였는데, 남들이 안 해본 걸 해보고 싶었어요. 터키와 관련된 학과를 찾아 한국외대 터키어과에 진학했죠. 제가 학창 시절 반에서 1등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때까지 터키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국내에 없으니까, 내가 지금 전공하면 1등이 될 거야,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한 거죠(웃음).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유학시험(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는 자비 유학도 정부 주관 시험에 합격해야 했다) 봐서 1986년 처음 터키에 갔어요. 1년간 어학 공부를 하면서 계속 공부를 할지 고민했고, 돌아와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죠.”

●지금처럼 한국과 교류가 활발하지 않던 시기인데, 유학 생활이 힘들지 않았나요.

 “당시에는 정말 미지의 세계였죠. 이슬람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서 부모님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터키에서 무관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삼촌한테 물어보고 ‘살기 괜찮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허락해주셨죠. 저는 터키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좋았던 게, 석사과정 친구들이 조를 짜서 번갈아 집에 찾아와 노트 필기를 보여주고 설명을 해줬어요. 터키가 옛날에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용이 찬란했잖아요. 친구들은 터키문학을 알리고 싶다는 순수한 바람으로 제 공부를 도와줬어요.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서로 다른 성향의 작가를 가르쳐주니까 저도 모르게 균형감각이 생기고 전체적인 맥이 잡혔어요. 그러면서 ‘터키문학에 나타난 동서양 문제’를 박사학위 주제로 정했죠. 제가 지금까지 터키문학 작품을 30권 정도 번역한 걸 보고 친구들이 ‘네가 이럴 줄 알았다’고들 합니다. 저는 ‘너희들 덕분’이라고 그러죠.”

오르한 파묵(왼쪽)과 이난아씨.

●파묵의 작품은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제 논문 주제를 아는 친구들이 『하얀성』을 읽어보라고 권했어요. 서양인 노예와 터키인 주인이 한집에 살면서 서로 점차 닮아가다 자리 바꿈을 하는 얘기예요. 파묵이 동서양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작품이기도 하죠. 그 무렵 『새로운 인생』이 새로 나왔어요. 저녁 메인 뉴스 직전에 책 광고를 하는 것도 놀라웠는데, 그 광고 카피가 바로 『새로운 인생』의 첫 문장이었어요. 읽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그 충격을 잊지 않기 위해 책상에 써 붙였죠. ‘나는 이 작가와 끝까지 가겠다’고. 먼저 『하얀성』을 혼자 번역하기 시작했어요. 박사 논문이 잘 안 써질 때면 조금씩 번역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돌려 읽었죠.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출판사 한 곳에서 『하얀성』의 영문 번역본 판권을 이미 샀더군요. (파묵이 한국에 소개된다는 생각에) 참 기뻤어요.” (이씨는 대신 『새로운 인생』을 번역 출간했다. 이후 『하얀성』은 영문 중역으로 처음 발간된 뒤 다시 이씨의 원문 번역으로 발간됐다.)

●파묵과의 첫 만남을 기억합니까.

 “번역이 난관에 부딪힐 때면 팩스를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e-메일이 없을 때라. 그러다 이스탄불에서 어느 겨울날 처음 만났는데, 큰 키에 검은 코트를 입고 나타난 모습이 참 멋졌어요. 함께 터키 식당에서 밥을 먹고 겨울 집필실을 보여줬어요. 파묵은 겨울 집필실과 여름 집필실, 두 곳에서 글을 씁니다. 이후로 지금도 매년 여름방학·겨울방학(이씨는 한국외대에 출강 중이다)이면 파묵의 집필실을 방문합니다. 집필실에 가면 저는 신발을 벗자마자 파묵의 책상으로 달려가 사진을 찍곤 해요. 손 닿는 자리에 무슨 책이 있는지 궁금해서. 파묵은 ‘한국 스파이가 또 왔다’고 농담하곤 합니다.”

●그의 작품을 번역하자면 터키의 전통과 현재, 역사와 문화까지 두루 알아야 할 텐데요.

 “터키문학 전공자에게 역사는 필수과목입니다. 번역할 때면 작품마다 배경이 된 시대의 역사서를 꼭 찾아 읽어요. 덕분에 파묵의 원문에 잘못 표기된 연도를 찾아내 바로잡은 적도 있어요.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 문학기행도 항상 다녀옵니다. 파묵의 일관된 주제 중 하나는 분신(分身) 혹은 ‘자리 바꾸기’예요. 『하얀성』에서 주인과 노예가 자리를 바꿨듯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역할 때는 한국의 오르한 파묵이 되려고 해요. 이 작품을 어떻게 집필하게 됐는지, 이 인물이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 등등까지 생각하면서요. 파묵은 소설 속 인물들에 어머니, 삼촌, 딸 등 자신의 가족 이름을 곧잘 붙인답니다. 자신을 닮은 인물도 있고요.”

●창작이 그렇듯 번역도 외로운 작업이라던데, 언제 가장 외로움을 느낍니까.

 “외로움이 아니라 질투심이죠. 세상에, 어떻게 이런 문장을 창조해냈을까 하는. 파묵의 문체에 익숙해졌는데도, 번역을 하다 보면 그 페이지에 있는 문장이 다 사라지고 딱 한 문장만 남는 듯한 순간을 만나곤 합니다. 그때까지의 소설 전체를, 인물의 심리를 정리하는 듯한 문장이죠. 파묵은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스토리·형식에 더해 문체에도 관심이 지대해요. 파묵의 문체는 만연체예요. 예컨대 산문집 『이스탄불』은 134쪽부터 141쪽까지 8쪽이 다 쉼표로 연결되는 한 문장이에요. (번역을 하다) ‘제발 중간에 마침표 하나만 찍어달라’고 했더니, ‘문체야말로 작가의 정체성’이라면서 ‘문체를 바꾸면 당신은 살인을 하는 것’이래요. 샤갈이나 피카소의 그림은 서명이 없이도 누구 그림인 줄 알듯, 파묵도 그런 문체를 지향합니다. 특히 작품마다 첫 문장의 흡입력이 대단하죠. 『새로운 인생』도 그렇고. 『내 이름은 빨강』의 첫 문장은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예요. 그야말로 호기심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죠.”

●터키에 한국문학도 소개되어 있습니까.

 “지금까지 터키에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이 8~9권 정도입니다. 저도 그중 이문열·이청준·김영하·천상병 등 5권을 번역했어요. 제가 번역한 터키문학 30편에 비하면 많지 않지만 한국 작가들 작품을 터키에 꾸준히 알리는 것도 제 큰 소망입니다. 유학 시절에는 일부러 한국 책을 많이 읽지 않았어요. 그러다 1997년 한국에 돌아와 제가 한국에 없을 때 나온 작품들을 밤새워 읽었습니다. 좋은 표현은 따로 노트에 정리했죠. 10년 가까이 터키에서 지내고 보니 어휘력이 많이 딸린다는 느낌이 있었어요. 기점 언어(번역의 대상인 언어)는 사전에서 찾으면 되지만, 모국어는 단단히 무장하지 않으면 번역을 못합니다. 터키도 지금 한류가 대단합니다. 현지 팬사이트 회원이 3만 명이 넘어요. 시간은 걸리겠지만 한국문학도 그런 붐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의 삶 꿰뚫고 있는 이난아씨
매일 터키 언론 검색, 파묵 기사부터 확인

파묵과 그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내 이난아씨의 눈빛은 빛났다. 작품과 작가로서의 삶은 물론이고, 파묵에 관한 터키 현지의 각종 보도까지 꿰뚫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터넷에서 터키 유수 언론에 실린 파묵 관련 기사를 검색합니다. 예전에 주고받은 e-메일도 차곡차곡 모아두었어요. 작가와의 교감이 번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책을 써보려고 합니다.” 이씨는 터키 문학을 한국에 소개한 공로로 지난해 터키 정부에서 감사패를 받았다. 소식을 들은 파묵은 “네가 이 상(감사패)을 받는 데 내가 일조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는 e-메일을 보내왔다고 한다.

 이런 그도 파묵과의 만남에서 가슴 철렁했던 순간이 있다. “파묵이 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했을 때였어요. 심포지엄 끝나고 바다가 보고 싶다고 해서 강릉으로 가는 길에 당시 집필 중이던 원고를 보여줬어요. 파묵은 지금도 손으로 원고를 쓰고, 어디든 원고 가방을 갖고 다닙니다. 저는 파묵의 첫 문장이 항상 기대가 됩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죠. 그런데 원고를 읽던 제가 ‘(첫 문장이) 어디서 본 듯하다’고 하니까 파묵이 전에 없이 불같이 화를 냈어요. 도대체 어디서 봤냐며, 저보고 ‘너는 작가의 영혼을 죽이는 사람’이라고까지 말하더군요.” 일정 내내 그를 보며 가슴을 졸였는데, 천만다행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묵이 먼저 화해를 청했단다.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우리는 서로를 도와야 하는 존재라고. 너는 내가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을 때부터 나를 알아봐 준 사람이고, 나를 지지해 줘야 한다고. 그러다 어떤 작가를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어요. 제 답은 오르한 파묵이죠. 또 물으니까 도스토옙스키, 나브코프… 파묵이 좋아하는 작가를 차례로 꼽았죠. 서로 웃음이 터졌어요. 그때 이후로 작가가 얼마나 예민한 영혼인지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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