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질문 찾아 생각 키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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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 Books 편집장

추석 연휴는 우리 아이들에게 평소와 다른 환경을 만나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시골의 고향 마을을 찾는다거나, 혹 도시에 머무르는 가족이라 하더라도 나흘 동안의 연휴를 이용해 어디든 다녀오기 충분한 시간이었으니까요.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현상들의 의미를 찾는 일을 철학하기라 이름할 수 있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 일상과 조금 다른 새로운 환경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의문들은 철학하기의 힘을 키우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평소 자주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도 다른 느낌이 들고, 의외의 의문이 떠오르기도 하니까요. 이때 누군가 곁에서 새로운 질문을 던져준다면 아이의 철학하는 힘은 한결 커질 수 있을 겁니다. 굳이 해답을 제시하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어차피 철학이라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바탕이니까요.

우리 아이들의 철학하는 힘을 키워주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 나왔습니다. 이미 〈소피의 세계〉(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현암사 펴냄)와 같이 철학의 무거운 주제를 흥미로운 소설적 구조로 풀어나간 책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생이나 혹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과 함께 읽어나가기는 쉽지 않았어요.

새로 나온 〈아빠와 함께 떠나는 철학여행〉(에바 졸러 지음, 김현자 김주일 함께 옮김, 인북스 펴냄)은 지난 해에 〈엄마가 만드는 꼬마철학자〉(에바 졸러 지음, 인북스 펴냄)의 후속편으로 엮어진 책으로,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편안한 철학 책입니다.

아이들에게 무슨 철학이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은 다름아닌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학문이고, 이는 곧 세상을 살아가는 근본적인 힘입니다. 어린 아이들이라 해도 그들 나름대로의 생각하는 방식이 있고,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을 바르게 혹은 더 깊고 다양하게 도와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이 책은 그래서 아이들이 흔히 접할 수 있는 환경과 사물에서 이야기를 꺼냅니다. 강가의 돌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도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종류의 돌이 있으며, 돌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첫 질문입니다.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수많은 돌들을 놓고, 돌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이렇게 시작한 질문은 '돌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정의할 수 있는가' '우리가 돌이라고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은 곧바로 이해할 것인가'로 이어집니다. 이같은 질문들은 바로 사물의 개념이라는 것을 이해하자는 속뜻을 감추고 있습니다. 이 책의 옮긴 이는 '말을 잘 다듬어 쓰는 일이 철학하는 데 일차적인 숙제'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앞에 놓인 사물과 현상들을 정확한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이 철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이죠.

'개념' '시작' '사람' '죽음' '순환'이라는 철학의 큰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무엇보다 일상 생활에서 철학의 주제들을 끄집어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갑니다. 이같은 주제들은 이미 철학사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한 바 있지요.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철학사의 업적들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냥 아이들의 일상을 소재를 아이들의 일상적 언어로 풀어나가는 데 이 책의 특별함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나는 왜 여자 혹은 남자인가?' '내 머리카락은 왜 빨간색 혹은 검은색인가'같은 질문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로 발전시켜갑니다. 어쩌면 어른으로 성장해 오면서 단 한번도 의문을 갖지 않았을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요. '나는 왜 이 세상에서 살게 됐을까'같은 질문도 있습니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철학의 궁극적 문제를 아이들의 힘으로 풀어가게 하는 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철학하기 전략인 셈이지요.

아이들의 이같은 질문을 성가시게 느끼는 어른들도 많습니다. 그건 그들에게 해답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질문에 대해 아이 스스로가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어른의 몫입니다. 어른이 아이의 질문에 곧바로 해답을 제시하는 것은 도리어 철학하기의 뒷걸음질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기본적인 질문을 제시한 뒤, 철학적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여러가지 질문들도 제시합니다.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 스스로가 피곤해하거나 중도 포기하게 될 때 즈음에 또 다른 하나의 질문을 던져 줌으로써 생각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주자는 거죠.

이 책의 또다른 미덕 가운데 하나는 옮긴 이들이 각 장의 맨 앞에 '도움말'이라는 항목을 만들고, 주제를 이해하기 위한 이야기들을 적어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독일어로 쓰여진 독일 철학 책을 우리가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안내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철학 책 한 권을 통해서 아이의 생각하는 힘을 키워줄 수 있다면 책 한 권 읽는 일을 그리 머뭇거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 소피의 세계(요슈타인 가아더 지음, 장영은 옮김, 현암사 펴냄)
* 아빠와 함께 떠나는 철학여행(에바 졸러 지음, 김현자 김주일 함께 옮김, 인북스 펴냄)
* 엄마가 만드는 꼬마철학자(에바 졸러 지음, 인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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