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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물가 비상!

중앙일보

입력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하반기 들어 각종 물가가 큰 폭의 오름세로 돌아서 물가안정 기조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기름값을 비롯해 버스·지하철요금 등 공공요금도 올해 일제히 올랐다. 기름값은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9월1일 0시부터 휘발유 가격이 ℓ당 30원 인상된 1천3백39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등유와 경유의 판매가격도 ℓ당 30원씩 인상돼 실내등유는 5백90원, 보일러 등유는 5백80원, 경유는 6백64원에 각각 판매되고 있다.

국제 기름값이 계속 상승하고 있는데다 국제 원자재 가격도 거의 모든 품목에 걸쳐 가파른 상승세를 타는 등 외부의 물가불안 요인도 점점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계획 발표에도 불구하고 8월30일 뉴욕시장에서 배럴당 33달러선을 넘어섰다. 뉴욕상품 시장의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 중질유는 이날 배럴당 33.32달러를 기록, 전날보다 58센트나 급증했다. 이날 뉴욕 유가는 지난 3월7일 34.13달러까지 치솟아 90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나타낸 이후 거의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런 추세라면 최근 10년새 가장 높은 고유가 시대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국제 원유가는 96년과 97년 19달러선까지 올랐다가 98년 14달러로 떨어진 뒤 지난해 상반기까지 16달러를 넘지 않았다.

하반기 물가불안은 올해 추석이 예년보다 한 달 가량 빨라 아직 햇곡식이 본격 출하되기 이전인데다 최근 몇 달간 시중의 자금난이 심각했던 터라 당국은 물론 소비자들도 걱정이 크다.

또 폭우와 태풍 등이 겹쳐 추석을 앞두고 농작물이 침수돼 채소류와 과일 등 일부 농산물 가격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시 농수산물 공사에 따르면 지난 달 23일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농산물이 유실되고 산지 출하작업이 지연되면서 전체 반입물량이 6천3백3t으로 크게 줄어 비가 오기 전인 전날의 7천25t에 비해 7백22t이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딸기, 호박, 고추 등 채소류 반입물량이 크게 줄어 가격이 최고 두 배까지 올랐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본격 수요가 예상되는 배, 사과, 포도 등 제수용 과일은 반입량이 격감해 가격 폭등이 염려되고 있다.

채소류는 애호박의 경우 8㎏이 8월 말 6천원에 거래됐으나 9월 들어 1만2천원으로 두 배 폭등했다. 풋고추 10㎏은 1만1천원에서 1만3천원으로 올랐다. 과일의 경우 추석을 앞두고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배는 출하량이 크게 줄어 원황 배(상품)
는 7.5㎏ 기준 2만4천∼3만원으로 8월 말보다 3천원 이상 올랐다.

사과(상품)
는 15㎏ 기준 2만7천∼3만8천원에 거래돼 3천원 상승했다. 복숭아(상품)
도 15㎏ 기준으로 2천원 오른 3만8천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농림부는 “추석을 앞두고 전국적인 비 피해 때문에 일시적으로 일부 품목의 가격 상승이 있을 수 있지만 추석이 지나면 안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9월 중에도 추석 때문에 쌀과 축산물, 배 등 일부 과실류 가격 인상이 예상되지만 현재 농축산물 가격은 추석 전의 예년가격과 비교하면 10% 정도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8월 중 농축산물 물가가 전년 말 대비 1.0%, 전년 동기대비 0.3% 정도 상승했지만 큰 문제는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추석을 맞아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쌀, 채소, 과일, 축산물, 가공식품 등 추석 성수품의 공급량을 평소보다 최고 3.3배까지 늘리기로 했다.

정부는 9월 들어 공매를 통해 조곡 80만석을 방출하고 쌀의 경우 다음달(10월)
까지 모두 17만5천 가마를 공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생산자 출하독려를 통해 ▶배추 1.3배 ▶양파 1.2배 ▶조기, 명태 등 각 2.0배 등으로 농축산물 공급물량을 확대키로 했다.

정부는 또 백화점 및 대형할인점 등 유통업체들의 ▶가격담합행위 ▶가격·품질·원산지 허위·부당 표시행위 등에 대해 집중 단속을 벌일 예정이다. 명절분위기에 편승한 매?ㅈ탉? 불공정 거래행위 등에 대해서도 집중적인 감시와 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정부는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상반기보다 높아져 2∼3%에 달하겠지만 올 물가상승 억제 목표치인 연평균 2.5% 달성은 무난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또 경기상승에 따른 수요압력은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의 이같은 물가안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과 민간경제연구소 등에서는 정부의 ‘가격규제를 통한 인위적 물가관리정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공공요금이나 관인(官認)
요금을 억눌러 물가를 관리하기보다는 개별품목의 가격은 시장에 맡기되 통화량 수위를 관리하는 거시적인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부보다 한은이 물가관리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물가안정에 관한 법률 등 관련법규의 가격 상한지정을 완화,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

한은은 최근 ‘물가안정 주체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홍보방안’이란 보고서를 통해 인위적인 가격 규제의 예로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철도, 우편요금 등 24개 품목의 가격을 결정한 것 ▶석유류 가격을 통제하기 위한 교통세와 일부 석유류 제품에 대한 최고 판매가격 규제 ▶행정지도 등을 통한 목욕료, 학원비 등 개인서비스 요금 규제 등을 꼽았다.

보고서는 정부의 이같은 규제는 ▶가격 규제를 회피하는 과정에서 ‘끼워팔기’등 불공정거래를 유발하고 ▶제품의 질과 서비스를 저하시켜 실제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을 오히려 상승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간경제연구소도 물가상승압력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성식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국제유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있으며 하반기부터 유가상승분이 본격적으로 공공요금에 파급될 전망이고, 내년부터는 정부의 에너지세제 개편으로 경유와 LPG값이 최고 두 배까지 오를 예정”이라며 “정부는 물가상승 심리를 미리 차단하는 정책들을 강구해 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물가상승에 대비해 통화긴축 정책을 쓸 단계는 아니다”고 진단했다.

홍순영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금융경색 등에도 불구하고 경기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는데 주목해야 하다”며 “아직 이르기는 하지만 경기상황을 주시하면 수요압력을 낮출 정책을 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기수 기자<leek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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