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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오명.서남표, 거취 결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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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간판 인재를 길러내는 KAIST가 갈수록 헤어나기 힘든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얼마 전 이 대학 교수협의회가 서남표 총장 해임 촉구 결의문을 채택한 데 이어 이번엔 오명 이사장이 서 총장에게 사퇴를 종용했다고 한다. 서 총장이 어제 본지 인터뷰에서 “오 이사장이 ‘고위층도 사임을 원한다’고 전했다”고 폭로했다. 서 총장의 이런 주장으로 인해 대학을 운영하는 이사장·총장 사이에 벌어진 갈등은 수습이 불가능해 보인다. 총장직을 유지하려는 쪽과 어떤 식으로든 밀어내겠다는 고지전 양상이 상아탑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여기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이 대학을 세계적 명문대학으로 길러내겠다는 비전도, 전략도 찾아보기 힘들다.

 오 이사장이나 서 총장 모두 과학기술계를 대표하는 원로(元老)들이다. 그런데 임기가 보장된 총장에게 중도 사퇴 메시지를 전달하는 오 이사장이나 ‘친(親)·반(反)개혁’으로 교수들을 구분해 반개혁의 유형을 서술하는 서 총장이나 참된 원로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갈등의 중재, 통합을 자아내는 헌신은 찾아보기 힘들고, 오는 7일 열리는 KAIST 정기 이사회에서 자기 편 이사들을 새로 선임하는 데 골몰하는 모습이다.

 지금 KAIST와 두 원로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다. ‘누가 반발하니 당신 나가라’고 요구하거나 ‘내가 나가면 대학 개혁이 안 되니 못 나간다’고 버티는 건 일방통행식 힘겨루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서 총장은 그동안 테뉴어(정년보장) 심사 강화, 실적 부진 교수에 대한 재임용 탈락 등으로 대학 개혁이란 새바람을 일으킨 공로가 분명히 있으나 지난해부터 두 번이나 교수들의 과반수에게서 사퇴 요구를 받은 상황이다. 이미 대학 내부는 소통이 단절됐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이런 의미에서 두 원로에게 KAIST의 갈등을 봉합하는 책임 있는 자세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두 원로 모두 자신의 거취에 관해 결단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