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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라틴바람

중앙일보

입력

평생 순탄한 삶을 산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겐 축복이지만 예술가에겐 큰 한계일 수 있다.

물론 복된 삶을 누리며 대작을 남긴 예술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요절' 이라든가 '자살' 이란 수식어가 붙는 천재예술가들이 많은 것을 보면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걸작은 고통과 비극 속에서 탄생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런 예술가들의 파란만장한 삶은 늘 영화의 소재로 각광받아왔다. 그 고통스런 생애에 극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더해지면 금상첨화다.

그런 점에서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1907~54)의 전기영화 제작을 놓고 할리우드 스튜디오간에 3파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멕시코의 신여성이랄 수 있는 칼로는 어두우면서도 강렬한 초현실풍의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10대 때 전차에 들이받혀 다리를 절단한 것을 비롯해 평생 여러차례 수술에 시달려야 했던 그녀는 스승이자 남편이었던 벽화작가 디에고 리베라와의 폭풍우 같은 사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칼로는 양성애자였고, 리베라 역시 자유분방한 여성편력으로 칼로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지만 두 사람은 육체적인 사랑을 뛰어넘는 애증의 관계를 지속했다. 칼로의 걸작은 대부분 리베라가 그녀에게 안겨준 고통의 산물이기도 했다.

현재 크랭크인을 서두르고 있는 3편의 영화는 모두 이 부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서 칼로의 예술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워너 브러더스가 배급할 영화는 프랜시스 코폴라가 제작을 맡고, 지난 여름 '더 셀' 로 흥행에 성공한 라틴계 여배우 겸 가수 제니퍼 로페스가 칼로 역을 맡을 예정. 감독 역시 라틴계인 루이 발데스로 확정됐다.

여기에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스튜디오는 미라맥스. 가장 섹시한 라틴계 배우로 각광받는 셀마 헤이엑이 2년 전부터 프리다 칼로역에 눈독을 들이며 추진해온 프로젝트지만 아직 감독이 정해지지 않아 착수가 늦어지고 있다.

미라맥스는〈중앙역〉의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와 스페인 감독 알모도바르 등에 제의했지만 수락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번째 영화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여성감독 베티 카플란의〈두 명의 프리다〉. 8년 전부터 제작을 꿈꿔왔지만 제작비 조달이 어려워 미뤄지다가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가 프리다 칼로 영화의 시장성을 인정하면서 제작의 길이 열리고 있다.

오랫동안 시도돼온 프리다 칼로의 영화화작업이 올해 부쩍 활기를 띠는 것은 할리우드가 이제서야 멕시코 인구를 비롯한 라틴계 관객들을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

특히 로스앤젤레스는 주민의 반 이상이 라틴계일 정도이며 로페스와 헤이엑.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흥행성 있는 라틴계 영화인들이 느는 것도 프리다 칼로의 전기영화가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 밑거름이 됐다.

성인층에 어필할 프리다 칼로 영화는 흥행을 최우선시하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 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 하지만 최근 할리우드 개봉작 중에서 중년 이상, 심지어 노년 관객을 위한 작품들이 늘고 있고, 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의 작품 선택에 변화를 가져오는 요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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