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피커’에 못 당하겠네 … 카드사 “차라리 친구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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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2011년 11월 28일 E1면 지면.

신용카드사 사장이 카드 혜택만 쏙쏙 골라 먹는 ‘체리피커(Cherry Picker)’를 만났다. 수익을 갉아먹는 체리피킹을 차단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체리피커에게 인기 있는 카드사가 될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최기의(56) KB국민카드 사장은 ‘체리피커앱’을 만든 개발자 조규범(38)씨를 지난해 말 초청해 경영 조언을 구했다고 16일 밝혔다. 체리피커앱은 카드 사용내역을 자동으로 스마트폰에 정리해 카드 혜택을 최대로 뽑아 쓸 수 있도록 돕는 애플리케이션이다. ▶<2011년 11월 28일 E1면>

 이 자리에서 최 사장은 경영에 필요한 의견을 구하고 앱 운영과 관련한 자료를 최대한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최 사장에 따르면 이는 “범을 잡기 위해 호랑이 굴로 뛰어드는 역발상”이다. “도망갈 게 아니라 체리피킹을 당하더라도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는 게 중요합니다. 그분들이 카드뿐 아니라 은행 등 다른 금융거래까지 한다면 회사엔 이익이죠.”

 모바일 기술 발전으로 체리피킹을 막을 수 없다면, 오히려 이들을 적극적으로 고객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체리피커의 타깃이 되는 ‘굴비카드’를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소개한 것도 같은 이유다. 굴비카드란 카드 1장의 연회비만 내고 여러 개 카드 혜택을 ‘굴비 엮듯’ 줄줄이 누리는 것이다. 카드사 중엔 KB국민카드에만 있는 제도다. 예전엔 고객이 알까 봐 쉬쉬했던 혜택이지만 이젠 오히려 고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있는 것이다.

 최 사장은 체리피커로 인한 카드사의 손해가 생각보다 막대하진 않을 거라고 예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고객이 체리피커가 되진 않을 겁니다. 모바일 기술에 익숙하면서도 부지런한 고객만이 체리피킹을 하겠죠.” 어차피 못 막을 거라면 체리피커를 막으려 애쓰기보다는 아예 열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최 사장과 만났던 조규범씨 역시 “늘어나는 체리피커를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최 사장의 ‘열린 자세’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최 사장은 고객이 원하는 부가서비스를 직접 골라 연회비를 정하는 카드를 올해 출시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예컨대 주유 할인은 연회비 1000원, 약국 할인 연회비 5000원 등 부가서비스마다 연회비를 매긴 뒤 고객은 원하는 것만 골라 담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중간에 부가서비스를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카드 발급이 줄어든다.

그는 “창구에선 카드 판매가 복잡해진다며 다소 부정적이지만 고객 선택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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