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무서워 아빠 금고 턴 중학 1년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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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형들이 고자질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어요. 왕따시킨다고 해 너무 무서웠고….”

 15일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A군(14·S중 1)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지난해 7월부터 2학년 학생들에게 금품을 빼앗겼다. A군 등 이 학교 학생 10여 명이 갈취당한 돈은 2학년 복학생 B모(16)군과 3학년 등 속칭 ‘일진’ 6명에게 상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들은 2학년에게 상납액을 정해 주고 돈을 모아 오게 하는 ‘피라미드식’으로 올 초까지 7개월간 금품을 빼앗았다. A군은 상급생들이 요구한 액수를 채우기 위해 아버지(50) 지갑에서 돈을 훔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폭력과 협박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그는 고물상을 하는 아버지의 금고에까지 손을 대고 가출했다. 성격이 밝고, 말 잘 듣던 A군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A군의 불행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7월 초. 동급생보다 한 살 많고 덩치가 큰(키 1m85㎝, 체중 90㎏가량) B군이 그 무렵 복학하면서부터다. 그는 다른 중학교를 다니다 적응을 못해 1년 쉰 뒤 이 학교로 전학 왔다. B군은 3학년 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며, 2학년에게 수시로 “돈을 모아 오라”고 시켰다. 처음엔 3000~5000원씩 뜯어가던 게 1만~2만원, 5만~8만원으로 커졌다. 심할 때는 일주일 간격으로 돈을 요구했다. 후배들을 볼 때마다 돈과 담배를 빼앗았다고 한다. 추석 등 명절과 크리스마스 등 기념일엔 평소보다 많은 돈을 모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 돈은 대부분 유흥비로 쓰였다. B군의 명령은 2학년을 거쳐 A군 등 1학년에게 내려갔다.

“처음엔 친구끼리 1000원, 2000원씩 모아 줬어요. 그러다 5만원, 8만원으로 액수가 커졌어요. 돈을 적게 주면 두들겨 맞고…. 잘못인 줄 알았지만 살기 위해 돈을 훔치기 시작했어요.”

 7개월간 A군이 상납한 돈은 100여만원. 친구에게 빌리거나 아버지 지갑에서 훔쳤다. 하지만 선배들의 돈 요구는 계속됐다. 견디다 못한 A군은 아버지의 고물상 금고를 노렸다. 7일 오후 2시쯤 금고에서 40만원을 훔친 A군은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다 그날 가출했다. 9일 밤에도 금고에서 30만원을 훔쳤다. A군이 많은 돈을 가져오자 일진들은 돈의 출처를 대라고 협박했다. A군은 공포감에 아버지 금고 위치를 댈 수밖에 없었다. 2학년 2명은 10일 오후 11시50분쯤 500만원이 든 금고를 들고 달아났다. 이런 범행 장면은 폐쇄회로TV(CCTV)에 그대로 찍혔다. A군의 아버지는 다음 날인 11일 경찰에 도난 사실을 신고했다. CCTV도 경찰에 제출했다. A군은 가출 5일 만인 12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고, 그간의 일을 고백했다. 은밀한 학교폭력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A군의 아버지는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광주=유지호·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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