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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유권자, 급격한 변화보다 안정적 양안 관계 선택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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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에게는 안정의 이미지가 강하다. 신뢰감을 주는 외모와 ‘겸손군자’(謙謙君子)라 불릴 만큼 진중한 성격뿐만이 아니다. 그가 내건 정책도 안정지향적이다. 2008년 58%의 득표율로 압승을 거둔 마 총통이 내건 양안(兩岸) 관계의 원칙은 안정(安定)·안전(安全)·안심(安心)의 ‘3안’이었다. 중국과의 통일을 추진하지 않고(不統), 독립도 추구하지 않으며(不獨), 무력도 사용하지 않겠다(不武)는 ‘신3불’ 원칙도 내세웠다. 그는 양안 관계의 안정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구축하고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14일 실시된 13대 총통선거에서 대만 유권자들이 또다시 마잉주 총통에게 승리를 안겨 준 것도 대만해협에 긴장의 파고를 높일 수 있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안정적 양안 관계를 선택한 결과였다.

선거 과정에서 마 총통이 내세운 재임 4년간의 최대 업적은 중국과의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다. 2010년 체결된 이 협정은 대만에서 중국으로 수출하는 530여 개 품목의 관세를 철폐한 사실상의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서로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 공식 입장에 따라 이름만 다르게 붙였을 뿐이다.

마 총통이 집권한 2008년은 대만 경제가 오랜 침체의 늪에 빠져 있을 무렵이었다. 반대로 중국 경제는 비약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마 총통은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이를 정책적으로 구현한 것이 ECFA였다.

통우(通郵ㆍ서신 왕래)ㆍ통항(通航)ㆍ통상(通商)의 ‘삼통(三通)’을 이뤄낸 데 이어 ECFA까지 체결함으로써 양안 교역량은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해 경제성장률은 10%를 넘겼다. 대만 기업의 중국 대륙 진출도 활발해졌다. 타이샹(臺商)이라 불리는 중국 내 대만 기업인은 현재 1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성향은 대체로 국민당을 지지한다. 양안 경제 협력이 활성화될수록 타이샹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타이샹 가운데 2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투표 참여를 위해 귀국했다.

반면 민진당의 차이잉원(蔡英文) 후보는 이른바 ‘92년 컨센서스(92共識)’를 쟁점화시켰다. 이는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각각 양안을 통치하던 1992년 반관반민의 협상기구를 통해 도출해 낸 ‘일중각표(一中各表)’의 원칙을 말한다. ‘하나의 중국’이란 대원칙은 양측 모두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대륙)과 ‘중화민국’(대만) 가운데 누가 중국을 대표하는 정부인지는 각자의 해석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차이 후보는 ‘하나의 중국’을 거부하고 대만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보장해주는 ‘신(新)대만 컨센서스’를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이 후보는 이 문제를 쟁점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끝내 ‘하나의 중국’이란 벽을 넘지 못했다. 대만 유권자들은 결국 마 총통의 현상 유지 정책에 손을 들어줬다.

이는 천수이벤(陳水扁) 집권 시절의 경험에서 체득한 학습 효과라 할 수 있다. 천수이볜은 2000년부터 8년간의 재임 기간에 대만 독립을 주장했지만 아무런 실속을 차리지 못했다. 양안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것은 물론, 현상유지를 원하는 미국의 지지도 얻지 못했다.

마 총통은 정치인으로서의 자산을 두루 갖춘 사람이다. 훤칠한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여성과 젊은 층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명문 대만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정ㆍ관계 입문 후에는 법무장관과 타이베이 시장 등 탄탄대로를 달려 일찌감치 미래의 총통감으로 촉망을 받아왔다. 장징궈 전 총통의 통역을 했고, CNN 생방송에 출연해 인터뷰를 자유롭게 할 정도로 영어에 능통하다.

‘신(新)대만인’이라 자처하는 마 총통은 본성인(本省人)과 외성인(外省人)의 전통적 대립 구도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국공(國共)내전에서 국민당의 패배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외성인들은 고토(古土) 회복을 주장하는 국민당을, 그 전부터 대만에 정착해 살아온 본성인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젊은 세대가 등장하고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대립 구도는 점점 희석되고 있다. 협력을 통해 실리를 추구하는 마 총통의 노선은 중국과의 통일도, 독립도 아닌 ‘제3의 길’인 셈이다. 마 총통의 재선으로 양안 관계는 우호 협력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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