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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최면 걸린 듯 덥석…태백시 '스키장의 재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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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4일 오후, 이용객이 적어 한산한 오투리조트 스키장. 12개 슬로프 중 4개만 운영되고 있다. 태백=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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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 함백산(해발 1573m) 기슭에 자리 잡은 오투리조트. 서울을 떠나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든 뒤 제천IC에서 빠져 국도로 한참을 달린다. 영월을 지나 고한·사북에서 30분 정도 동해시 쪽으로 달리면 두문동재를 넘어 오른쪽에 장쾌한 함백산이 웅자를 드러낸다. 지난 3일 오후 기자가 찾았을 때 오투리조트는 스키시즌이 절정인데도 슬로프가 한산했다. 고작 몇 십 명의 이용객들이 한가로이 스키를 즐기고 있었다. 곤돌라 한 대를 포함해 전체 6기의 리프트 가운데 3기는 멈춰서 있었다. 가동되는 3기도 손님이 적어 빈 수레처럼 홀로 도는 게 태반이었다. 2008년 개장 이후 4년째 이 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장사가 안 되니 오투리조트의 경영난은 심각하다. 개장 이후 매년 200억원 안팎의 적자가 쌓이고 있다. 직원들 급여가 3개월 넘게 밀려 리조트 대주주인 태백시가 긴급 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리조트 운영사인 태백관광개발공사의 초기자본금(1100여억원)은 잠식된 지 오래다.

내장객이 별로 없는 것은 인근 하이원리조트와 크게 비교된다. 지난해 12월 26일 밤, 크리스마스 전후 성수기지만 오투리조트 스키장엔 손님이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드물었다. 같은 시간대, 이곳에서 차로 30분 거리인 하이원리조트 스키장은 야간임에도 스키하우스가 발 디딜 틈 없이 손님들로 붐볐다. 리프트에는 수많은 스키어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이원리조트는 2006년, 오투리조트는 2008년 각각 개장했다. 슬로프 수는 각각 18개와 12개. 하지만 2010~2011시즌 스키장 이용자 수는 하이원이 약 69만 명, 오투리조트는 9만4000여 명이었다. 하이원은 스키장과 콘도 건설에만 3800억원을 들였고, 오투리조트는 여기에 골프장(27홀)까지 포함해 4400억원을 투입했다. 서울에서의 접근성에서 하이원이 유리하다는 점을 인정해도 이용자 수가 7배 이상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오투리조트의 경쟁력이 하이원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증거다. 스노보드가 유행이지만 오투리조트의 곤돌라에는 보드보다 스키장착대가 더 많이 달려 있다. 구식 설계라는 뜻이다. 리프트·콘도시설도 하이원에 미치지 못한다. 오투리조트가 민간 매각을 추진한 지난해, 현장을 점검한 한 레저분야 대기업은 ‘현 시설에 우리 회사 리조트 이름을 붙이려면 인수액 외에 추가로 2000억원은 더 들여야 한다’며 입찰에 난색을 표할 정도였다.

‘오투의 재앙’ 침체 늪에 빠진 태백시

지난해 9월 오투리조트는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직원 수를 적정인원(236명)의 절반인 124명으로 줄였다. 전체 12개의 슬로프 중 올해는 4개만 열어놓고 영업하고 있다. 손님이 별로 없는 데다 인건비 등 경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2011년 말 리조트의 총 채무액은 2859억원. 이 중 태백시가 지급보증한 차입금이 1490억원으로 매년 시가 부담하는 이자만 107억원이 넘는다. 게다가 아직 지급하지 못한 리조트 공사비 900억원과 세금·전기료·각종 경비도 태백시가 물어줘야 한다. 태백시의 2012년 예산은 약 2500억원. 이 중 인건비 등을 빼고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자체사업 등에 태백시가 쓸 수 있는 돈은 200억원 안팎이다. 이 돈을 자본잠식 상태인 오투리조트에 전부 쏟아 부어야 하는 상황이다. ‘오투리조트의 재앙’은 태백시 전체를 불황과 어둠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문제는 회생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백시 살림은 빈사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강원도 태백시 번영로(옛 중앙로). 낙동강 발원지로 알려진 황지(黃池) 연못 주변에 형성된 태백 최고의 번화가다. 3일 밤 기자가 번영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자유시장을 찾았을 때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보기 어려웠다. 상인 정영도(78)씨는 “손님이 없어 가게 문을 아예 열지 않는 곳도 꽤 된다”며 “문을 열어도 가게 전기료가 안 나올 정도”라고 울상이었다. 자유시장조합 조춘화 상무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밤마다 돈 세는 게 일이라 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던 시장”이라며 “그때 번 돈으로 가게를 장만한 덕에 임대료 부담이 없어 그나마 문이라도 열어둔다”고 말했다. 태백시로서는 어떻게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김연식 시장은 “오투리조트 관련 이자 부담 때문에 아무리 경비를 줄이고 긴축 예산을 짜도 도시 활성화를 위해 쓸 여유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오투리조트는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이곳에 스키장을 세우자는 아이디어는 90년대 초 처음 나왔다. 국내 레저산업 1세대인 명성의 김철호 전 회장이 사업 재기를 위해 대규모 스키 리조트를 이 일대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들고 왔다고 한다. 김 전 회장의 계획은 좌절됐지만 아이디어는 진화했다. 폐광지역을 되살려야 한다는 주민들의 집단적인 절박감이 리조트 사업의 촉매제가 됐다.

석탄산업이 활황이던 80년대, 태백시는 인구가 12만~13만 명을 넘나들며 활기가 넘쳤다. 태백시 광산지역사회연구소 원기준 소장은 “한창 때에는 45개의 광업소가 운영됐고 상업중심지인 황지동 일대는 대도시 못지않았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국내 석탄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자 정부가 89년 폐광정책을 담은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을 펴면서 상황이 변했다. 탄광이 3개로 줄었고 인구도 몇 년 만에 7만 명 수준으로 급감했다. 비슷한 처지의 태백·정선·영월군은 대정부 투쟁을 통해 ‘폐광지역 지원 특별법’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특별법의 핵심 지원사항인 강원랜드 입지가 정선군 사북·고한읍 일대로 정해지면서 태백시민들의 위기감은 절박감으로 변했다. 어떻게든 새로운 사업으로 태백시를 되살려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사업을 추진한 홍순일 전 태백시장은 “당시에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열망을 반영해 시작한 사업이다. 탄광업이 사라지는 마당에 관광을 통해 도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시민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고 건설 이유를 설명했다. 홍 전 시장은 95년 관선 태백시장으로 시작해 민선 1, 2, 3기에 내리 당선되며 2006년까지 태백시정을 이끌었다. 시민들의 기대감이 크다 보니 사업성을 우려하는 일부 목소리는 묻혔다. 태백시민연대 장윤철 위원장은 “강원랜드를 정선군에 빼앗겼다는 지역정서와, 어떻게든 관광도시로 일어서야 한다는 조바심이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팽배했다”며 “반대의견을 가진 시민들이 적절한 문제제기를 못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아쉬워했다.

절박감은 부정적인 사업 전망도 덮었다. 태백시는 공사를 앞두고 경제성 분석 용역을 발주했다. 당시 국내 유수 토목설계·감리회사인 D사는 1, 2차 사업에 대한 공사기간 13년을 포함해 25년간 운영할 경우 순현재가치가 마이너스 216억원이라는 예측결과를 내놨다. 미래에 발생할 이익과 손해를 따져 현재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순현재가치) 216억원의 적자가 발생한다는 뜻이었다. 한마디로 사업성이 없다는 보고서였다.

반면 태백시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사업성을 다시 따진 수정 보고서를 만들었다. 공사기간을 1차 사업분(3년)만 잡는 등 수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순현재가치가 441억원이라는 결과물이 도출됐다. 사업성이 상당히 높다는 상반된 분석 결과다.

유태호 태백시의회 의원은 “태백시 자체 사업계획서는 외부 용역기관의 보고서에서 공사기간과 비용을 줄이는 등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왜곡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착공식은 2004년 11월, 주요 사업에 대한 본격 공사는 2005년 7월 시작됐다. 공사에 들어간 뒤에는 잦은 설계변경 등으로 전체 사업비용이 치솟았다.

파산한 일본 탄광도시 유바리와 닮은꼴

관 주도의 성급하고 부실한 시설투자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일본 홋카이도의 탄광도시 유바리(夕張)시의 사례에서도 발견된다. 한때 일본에서 손꼽히는 탄광도시였던 유바리시는 70년대 이후 석탄 수요가 줄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79년 당선된 나카타 데쓰지(中田<9244>治) 시장은 이후 여섯 차례 연속 당선되면서 24년간 유바리시를 이끌었다. 첫 선거에서 ‘탄광에서 관광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그는 “전성기의 영광을 유지하려면 그만한 투자를 해야 한다”며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석탄박물관, ‘석탄의 역사’ 테마파크, ‘로봇 대과학관’, 대규모 스키 리조트 등 관광 시설을 31개나 지었다. 이 중 성공한 사업은 한 건도 없었다.

일본 지방자치 전문가들은 사업이 남발되던 80~90년대에 감시나 견제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유바리시의 비극이라고 꼬집는다. 나카타 전 시장이 장기간 시정을 장악하면서 반대 세력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시민들도 장밋빛 계획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유바리시 ‘파산’의 직접적 계기가 된 불법 채권 발행도 시 내·외부의 감시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책임자라고 할 수 있는 나카타 전 시장은 2003년 시장직을 내놓은 뒤 그해 사망했다. 이미 시의 재정 적자가 엄청났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몇 년 뒤의 일이다. 결국 2007년 유바리시는 일본 정부로부터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돼 사실상 파산했다.

현재 태백시는 자본과 경험이 풍부한 강원랜드 측에 리조트의 인수를 요청해 놓고 있다. 강원랜드는 입장표명을 않고 있지만 인수 의향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강원랜드가 위치한 정선군과 정선군 의회는 반발한다. 강원랜드가 오투리조트를 인수하면 동반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이에 따라 강원랜드가 자리잡은 정선군의 세수나 경기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태백=이승녕 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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