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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손병수의 희망이야기

소통이 희망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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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병수
논설위원

아들이 안 들어왔다. 새벽 3시10분. 문틈으로 스며든 불빛에 잠이 깼다. 아들이 들어오면 끄고 자라고 거실에 켜둔 불이었다. 아들 방문을 열어봤다. 없다. 혹시나 해서 현관 문도 열어봤다. 없다. 이런 일이 없었다. 아내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아들과 둘이서만 산 지가 제법 됐다. 그동안 아침 챙기고 청소하며 나름대로 엄마 노릇을 해왔다. 일 때문에 늘 늦긴 했지만, 아들은 외박한 적이 없다. 정신을 가다듬고 우선 전화를 돌렸다. “전원이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합니다.…”. 차가운 녹음만 흘러나왔다. 오전 3시21분. 잠시 궁리하다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연락 바란다.” 오전 3시39분.

 오늘따라 특별히 늦는 것이겠지, 군대까지 갔다 왔는데 무슨 일이 있겠나, 생각했다. 일단 불을 끄고 누워 잠을 청했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똑, 똑 물방울 소리가 들렸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기온이 급강하해 수도가 얼어 터질 위험이 있으니 주방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두고 주무세요”라는 관리사무소 안내방송에 따라 흘려둔 물소리였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두꺼운 파카를 껴입고 나가 아파트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집에 다 와서 긴장이 풀린 나머지 벤치에서 잠들 수도 있다. 나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그러나 깊은 겨울, 새벽 4시의 아파트 단지는 무섭도록 고요했다.

 다시 집에 들어왔다. 잠은 이미 달아나버린 지 오래. 오만 생각이 밀려왔다. 왜 안 들어올까. 아니, 왜 연락이 안 될까. 이 시간에 누구에게 물어볼 것인가. 화가 났다. 그러나 이내 근심, 걱정으로 바뀌었다. 겨울 밤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불길한 상황이 머리를 스쳐갔다. 잠든 휴대전화가 불안과 번민을 키웠다. 고민은 곧 반성으로 이어졌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내가 무심히 저질렀던 수많은 불통의 밤이 떠올랐다. 젊은 날, 일과 약속을 핑계로 2차, 3차 쏘다니다 새벽에 들어가 보면 아내는 거실 소파에 웅크리고 있곤 했다. 연락도 없이 자정을 넘기는 가장의 귀가를 기다리며 아내는 얼마나 속이 탔을까. 엄마 노릇을 대신 하다 보니 불통이야말로 불안과 절망의 싹임을 절감했다.

 최근 『미국 쇠망론』이란 책을 펴낸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정보통신 기반시설이 낙후된 미국의 현실을 비판하며 “한국의 디지털 통신망은 미국의 세 배 정도 앞서 있다”고 부러워했다. 실제로 한국은 휴대전화 세계 최강국이다. 그런데 내 아들의 전화는 불통이다. 나라는 소통이 안 된다고 난리다. 아무리 휴대전화, 정보통신이 발달하면 뭐 하나. 전원을 끄듯 마음을 닫으면 세상은 불통인 것을. 이제부터라도, 나부터라도 ‘불통의 밤’을 끝내자고 다짐했다. 회사에 가서 찬찬히 아들의 행적을 찾아보자고 출근을 서두르는데 전화가 왔다. “아버지, 어젯밤에 회식이 늦게 끝난 데다 너무 추워 찜질방에서 잠시 쉬고 간다는 것이 그만 잠이 들어버렸네요. 휴대전화가 꺼져 있는 줄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아아, 소통은 희망이었다. 휴대전화에 찍힌 시간이 선명했다. 오전 7시03분.

손병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