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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내 아이가 대기업에 취직할 확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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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국 리얼리즘 사진의 선구자’로 불리는 임응식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지난 연말 짬을 내 이 사진전을 둘러봤다. 그의 사진은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해 한국전쟁을 거쳐 1990년대 명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풍경과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사진전을 보며 그가 남긴 ‘기록의 예술’에 빠져드는 사이 여러 언론에도 소개된 ‘구직(求職)’이라는 제목의 사진에 눈길이 갔다. 53년 작품으로 벙거지 모자를 푹 눌러 쓴 젊은이가 한자로 ‘구직(求職)’이라 쓰인 푯말을 목에 걸고 도심 거리 한편에 기대선 모습을 담고 있다. 전쟁 후 민초들의 고단하고 남루했던 삶을 가슴 아프게 느끼게 한다.

 어느 때, 어느 곳을 막론하고 일자리는 삶의 기초적 조건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의 기초적 조건이기도 하다. 일자리가 있어야 소비가 늘어 내수 경제에 활력이 생긴다. 반대로 일자리가 부족하면 사회안전망 부담이 늘어 일자리가 있는 이들조차 허리띠를 더 졸라매야 하고, 결국 소비가 줄어 경기가 얼어붙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요즘 정부가 무엇보다 일자리에 신경을 부쩍 쓰는 게 바로 이런 이유다.

 그런데 한 가지, 지금 우리에게 정말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일까. 얼마 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으로 5인 이상 기업에 빈 일자리만 12만5000개가 된다고 한다. 게다가 한국에는 약 50만 명의 외국인 근로자와 17만 명의 외국인 불법체류자가 들어와 있다. 이들이 한국에서 일하게 된 연유는 ‘일자리가 비어서’다. 한쪽에선 일자리가 없다고 아우성인데 다른 쪽에선 일손을 구하려 안간힘을 쓰는 게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따로 있다. 대기업이나 공기업 같은, 번듯한 일자리만 고집하는 풍토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필자는 부모 세대와 청년들에게 불편하지만 알아야 할 진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교육개혁을 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학부모가 ‘내 아이만은 명문대에 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부모들은 취업을 할 때도 내 자식만큼은 대기업에 들어가리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대학 졸업생이 대기업에 입사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요즘 전문대를 포함해 한 해 대학을 나오는 젊은이가 54만 명가량 된다. 그러나 이들 중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사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4만 명을 넘지 못한다. 비율로는 7.4%, 대략 대학 졸업자 10명 중 8~9명은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다는 의미다.

 범위를 더 넓혀 대기업에 공무원·공기업·교사·의사·법조인 등 소위 ‘갖고 싶은 일자리’를 모두 더한다 해도 매년 신규 수요는 10만 개를 넘지 못한다. 한 해 대학 졸업생 5명 가운데 4명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취업을 앞둔 청년이나 그 부모가 대기업만을 고집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아니 실현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자리에 가지 못하는 젊은이에게 희망이 없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보자. 현재 우리나라의 최상위 100대 기업 중 41개는 10년 전에, 그리고 73개는 30년 전에 100위권 밖이었거나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기업이다. 이는 기업의 수명이 그만큼 짧고 빨리 변화할 뿐만 아니라 한때의 승자가 영원한 승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이여, 대기업이 아닐지라도 과감하게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우리나라에는 젊은이의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기다리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있다. 그중에는 대기업 못지않은 대우를 해주는 곳도 많다. 이런 업체에 들어가 청년의 열정과 노력으로 중소기업을 키우고 미래의 승자가 되는 것이 대기업에 안주하는 것보다 훨씬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기성세대가 맨 땅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듯이 젊은 세대가 중소기업 현장으로 달려가고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우리나라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해 주었으면 한다.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했다. 필경 도전하려는 자세 없이 축 처져 있는 젊은이들을 질타한 얘기일 것이다. 취업난에 어깨가 처져 있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의 젊음을 무기로 임진년에는 부디 ‘끝없이 갈망하고 바보처럼 도전하기를(stay hungry, stay foolish)’ 기대한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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