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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긴 선녀가 가려운 데 긁어준다’를 네 자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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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호 14면

단문 메시지 중에서도 한자 네 자로 핵심을 찌르는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어록’의 결정판이다. 짧은 네 글자 속에 이를 던진 사람의 마음가짐과 그가 처한 환경, 인생철학까지 두루 압축해 보여 준다. 주로 새해나 기념일 등 통과의례 때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화두(話頭)로 던지는데, 종종 1년의 유통기한으로 소비되고 있다.

어록의 결정판, 사자성어

특히 새해 벽두에 던지는 사자성어는 신년사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압축해 만들어진다. 글자가 많지 않아 외우기도, 떠올리기도 쉽다. 바로 이러한 장점이 사자성어가 화두로 환영받는 이유가 되기도 하다. 현대차그룹 이화원 이사는 “사자성어는 메시지를 함축해 전달하기에 좋은 수단”이라며 “네 글자만으로 구성원 모두에게 각오를 다지게 할 수 있어 훌륭한 경영수단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사자성어는 시대를 보여 주는 만화경(萬華鏡)이다. 대선과 총선이 함께 치러지는 올해 국내 대학교수들은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사자성어로 꼽았다. 파사현정은 불교에서 나온 용어다. 부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생각을 버리고 올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올해 대선과 총선에서 ‘편법’ 대신 ‘정의’가 바로 섰으면 하는 마음을 잘 드러내 준다.

기업이 경영화두로 던진 사자성어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슬기롭게 대처하겠다는 의지가 두드러진다. 새해에도 여전히 유럽 재정위기와 더블딥 가능성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내실을 다진다는 의미로 ‘절차탁마(切磋琢磨)’로 정했다. ‘옥돌을 잘라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낸다’는 뜻으로 품질경영을 강화해 브랜드 가치를 높임으로써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SK그룹은 ‘거친 돌밭을 가는 소처럼 강하고 우직하게’라는 ‘석전경우(石田耕牛)’를 선정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우직하게 기회를 찾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자성어는 또한 간절한 바람과 희망도 담고 있다. 취업포털 사람인에 따르면 구직자들은 새해 소망을 나타내는 사자성어로 ‘소원성취(所願成就)’를 꼽았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일자리를 갖고 싶은 간절한 소망을 잘 표현하고 있다. 직장인들이 꼽은 사자성어는 ‘마고소양(麻姑搔痒)’. 손톱이 긴 선녀가 가려운 곳을 긁어 준다는 뜻으로 모든 일이 뜻대로 되길 바란다는 의미다.

증권사 리서치센터 수장들은 올해 증시 전망을 반영한 사자성어로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가장 많이 꼽았다. 올 한 해 코스피지수가 대외변수 여파로 녹록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결국에는 잘 될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표현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1일 ‘2012년 신년인사’를 통해 ‘임사이구(臨事而懼)’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삼았다. 세종대왕이 인용한 표현으로 ‘어려운 시기에 큰일에 임하여 엄중한 마음으로 신중하고 치밀하게 지혜를 모아 일을 잘 성사시킨다’는 뜻을 갖고 있다. 올해도 우리 국민이 다시 한 번 힘을 모았으면 하는 대통령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한편 최근 들어 신년화두로 사자성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줄어드는 조짐도 보인다. 특히 재계에서 우리 기업이 글로벌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두산그룹 금동근 상무는 “사업체 절반 이상이 외국에 있다 보니 경영화두로 사자성어를 제시하면 이를 외국어로 번역해야 하는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이런 점도 사자성어를 화두로 발표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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