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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천연 재료에 덴마크식 이름...고품격 전략으로 성공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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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호 28면

아이스크림은 후식과 간식으로 애용되는 기호 식품이다. 아이스크림의 기원에 대해선 설이 분분하다. 고대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혹은 오스만 터키 시대부터 내려온다는 주장이 있다. 또는 13세기 중국 원나라 시절부터 전해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원 세조 쿠빌라이 칸 시대의 왕실에서 눈에 과일향을 넣어 후식으로 먹었고, 마르코 폴로가 훗날 이를 이탈리아에 전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소르베(셔벗)의 원조다. 최초의 우유 아이스크림은 17세기 영국 왕실의 프랑스 요리사 제랄 티생이 만들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같은 프랑스인 니콜라 르메리가 아이스크림 제조법을 체계화했다.

박재선의 유대인 이야기 - 세계적 아이스크림 ‘하겐다즈’ 창업자 루벤 매터스

요즈음 한국도 아이스크림의 커다란 시장이 됐다. 크게 보아 미국 브랜드 2개와 토종 브랜드 1개가 삼각 경쟁구도를 이룬다고 한다. 미국엔 하겐다즈, 배스킨 라빈스, 벤 앤드 제리 등 3대 아이스크림 메이저가 있다. 벤 앤드 제리를 제외한 앞의 두 개 브랜드는 우리 시장에 이미 정착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 3대 아이스크림 제조사 창업자 모두가 유대인이다. 1953년 LA 인근 글렌데일서 시작한 배스킨 라빈스는 버트 배스킨과 어빈 라빈스가, 78년 버몬트 주 벌링턴서 선보인 벤 앤드 제리는 벤 코언과 제리 그린필드가, 그리고 61년 뉴욕 브루클린서 처음 판매된 하겐다즈는 루벤 매터스(사진)가 각각 설립했다.

잡화 행상하다 친구 권유로 뛰어들어
매터스는 1912년 폴란드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매터스는 젊은 시절 뉴욕 브루클린서 잡화 행상을 했다. 그러다가 친구의 권유로 아이스크림에 관심을 갖는다. 그는 아내 로즈 베셀과 함께 고급 아이스크림 개발에 매달린다. 로즈도 영국서 태어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당시는 거칠고 무척 단 아이스크림이 주류였다. 매터스는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개발과 생산에 열정을 바쳤다. 인공 감미료, 방부제 그리고 신선도가 의심스러운 우유는 쓰지 않았다. 오로지 고급 버터 지방, 천연 크림, 신선한 달걀 등 엄선된 천연 재료로만 만들었다. 61년 매터스는 바닐라·커피·초콜릿 등 세 가지 향의 하겐다즈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자신의 브루클린 가게에서 처음 판매했다. 바닐라는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수입했다. 덴마크식 이름인 하겐다즈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매터스 부부는 모두 덴마크 또는 북유럽과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가 이 특이한 상호를 채택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덴마크의 청정 낙농국 이미지가 고급 천연원료만 사용하는 하겐다즈 제품의 고품질과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덴마크는 2차대전 중 중·동부 유럽 유대인 피란민을 호의적으로 돌봐준 나라라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덴마크어엔 독일어식 움라우트가 없지만 유럽풍의 이국적 분위기를 살리려고 하겐다즈의 철자 중 첫 번째 a 에 움라우트를 넣었다고 한다.
판매 초기 대중의 반응은 무척 싸늘했다. 새로운 맛과 향은 그런대로 호평을 받았지만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그리고 소비자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매터스 부부는 기죽지 않고 품질 향상을 위한 실험을 거듭해 신제품을 속속 개발했다. 매터스는 자신이 원하는 딸기향 단 한 가지를 만들어내려고 무려 6년간 실험을 거듭했다. 이제 하겐다즈의 명성은 차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접한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하겐다즈를 찾게 됐다.
미국서 대성공을 거둔 하겐다즈는 67년부터 전 세계로 수출됐다. 55개국에 900개의 체인 매장을 보유한 식음료 부문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91년엔 한국에도 진출했다. 96년엔 신상품 아이스 바도 나왔다. 같은 해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녹차 아이스크림과 냉동 요구르트 제품도 개발했다.
매터스는 ‘즐거움’과 ‘만족’이란 두 가지 표어를 내걸었다. 그리고 당도가 높은 미국 아이스크림에 대해 비우호적이며 매우 까다로운 시장인 유럽을 중점 공략했다. 유럽 아이스크림은 덜 달고 세련된 맛은 있지만 미국과 같이 대량 생산체제에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결국 유럽 시장도 하겐다즈 공세에 무너지고 말았다.
매터스는 83년 회사 운영권을 식품기업 필스버리사에 넘겼다. 그러나 94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신상품 개발 작업에 계속 참여했다. 2001년 필스버리는 하겐다즈를 종합식품기업 제너럴 밀스에 매각했다. 현재는 제너럴 밀스사가 상표권과 제조권을 행사한다. 그리고 스위스계 다국적 식품 메이저 네슬레의 자회사인 드레이어사가 배급과 유통을 맡고 있다.

미국인에게 해로운 식품 9위에
2011년 7월 미국 ‘공공이익을 위한 과학센터’(CSPI)는 미국인의 일상 식품 중 건강에 해로운 품목 10개를 선정했다. 하겐다즈는 높은 칼로리 양을 이유로 9위를 차지했다. 8위는 유대인 하워드 슐츠가 설립한 커피전문점 스타벅스에 돌아갔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하겐다즈는 세계 아이스크림 시장서 부동의 강자로 계속 군림하고 있다.
매터스는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폴란드 유대인 미국 이민 1세대에 속한다. 이 시대 대다수 중·동부 유럽 유대인들과 같이 그도 미국 정착 초기엔 이것저것 잡일을 했다. 그러나 평범한 아이템인 아이스크림에 착안해 동물적인 비즈니스 감각에 의한 현장 개발을 통해 아이스크림을 고급화시키고 나아가서 확고한 세계화 브랜드로 키워냈다. 유대인들 대부분은 탄탄한 교육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배우지 못한 유대인들도 고학력자 못지않게 지혜와 창의력을 지니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받은 토라와 탈무드 교육은 유대인이 창의력과 생활의 지혜를 배양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지침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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