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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자의 새해 소망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2호 38면

“새해 소망이 무엇인가요?”
만일 당신이라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두 달에 한 번꼴로 회사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는데, 그는 약속도 없이 무작정 찾아와서는 10분이고 30분이고 무한정 기다리는 사람인 데다 딱히 용건도 없고 이쪽의 일정이나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냥 찾아오는 불청객인데, 그래도 당신을 찾아온 손님이니 얼굴도 안 보고 돌려보내기가 너무 야박한 것 같아 당신은 12층 상담실로 올라갔는데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가 건네는 말이 새해 소망을 묻는 것이라면.내게도 새해 소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약속도 용건도 없이 찾아온 사람에게 밝혀야 할 정도로 벅찬 것은 아니다.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뭐 특별한 게 있나요? 그냥 그렇죠.”
“성공? 건강? 가족의 화목?” “그럴 수도 있고요, 뭐.”
그는 화제를 바꾼다.
“대체 비결이 뭡니까? 결혼정보 분야에서 듀오가 압도적인 1위인데 십 년 넘게 성공을 지켜온 비결이 뭔가요?”
몇 달 전에도 성의껏 답해준 질문이라는 것을 정말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에이, 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 주세요.”

그는 수첩을 편다. 마치 내가 입만 뻥긋하면 다 기록하겠다는 듯.
“김 부장님은 초창기 멤버일 테니 누구보다 잘 아실 거 아닙니까?” “전 잘 모릅니다.” “제가 성공한 분을 많이 만나는데 김 부장님, 성공한 분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그건 말이죠. 겸손하다는 겁니다. 어느 분야든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겸손하다는 거예요.”

겸손이란 무엇일까? 주위에서 ‘겸손한 사람’이란 평을 듣는 사람일수록 의외로 자존심이 강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너무나 자존심이 강해서 겸손한 것인지 모른다. 너무 강한 것은 오히려 약하니까. 그들은 가벼운 충돌에도 너무 쉽게 상처받고, 한번 상처를 받으면 그 고통이 다른 사람에 비해 너무나 강하고 깊고, 상흔이 오래 남는 여린 내면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자신의 전 존재가 모욕당한 느낌으로 죽어버릴 것 같은 상태에 빠지는 섬세하고 허약한 영혼인지도 모른다. 이른바 ‘겸손한 사람’의 물러섬과 몸 낮춤을 보면서 나는 그런 것이 사람 사이의 자연스러운 부딪침을 두려워하고, 어떻게든 비켜가려는 그들의 전략적인 방어자세가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를 두고 ‘겸손하다’고 한다. 딱한 노릇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건방진 사람이 성공한 예는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나는 자꾸만 건방지고 싶어진다. “이렇게 매번 약속도 용건도 없이 오시면 어쩌느냐? 설마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중에 약속 없이 찾아온 사람을 만나주는 여유도 들어 있느냐?”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워낙 겸손한 사람인지라 간신히 참는다. 그때 생각 하나가 수줍게 떠올랐다. 나는 새해 소망을 그에게 겸손하게 밝힌다.
“지금 생각이 났는데요. 제게도 새해 소망이 있습니다. 그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성공은 못하더라도요.”


김상득씨는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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