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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 한반도 … 우리 하기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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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서 한라까지, 흑룡의 해 밝았다 한반도 시원(始源) 백두산 자하봉(2618m) 위로 해가 솟았다. 천지를 휘감던 바람이 눈 덮인 백두산 자락에 흑룡의 비늘을 아로새겼다. 새해 아침, 백두의 정기가 한반도를 관통하듯 우리들 가슴에도 뜨겁게 흐른다. [사진가 박웅]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

2012년 새해를 세계는 불확실성과 불안 속에서 맞고 있다.

한반도와 한국인도 예외일 수는 없다.

세계사의 틀과 성격이 통째로 바뀌는데 어찌 예외 지대가 있겠는가.

소련의 해체와 독일 통일로 냉전이 마감된 후 급격히 진전된 시장의 세계화는 오늘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선진국을 자처하던 미국과 유럽의 금융시장 혼란과 세계경제의 지속적인 불황국면이 세계화를 주도한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와 불신을 확산시켰다. 이에 더해 정치·군사적 세력 재편성에 대한 불확실성은 먹구름처럼 지구촌을 덮어버렸다. 과연 세계화된 지구촌의 안정된 관리체제를 주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대중의 욕구와 요구를 적절히 조정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리더십의 출현이 가능할지 묘연한 상태다.

이렇듯 요동치는 세계사의 고비마다 태풍의 눈이라 할 수 있는 한반도는 늘 격랑에 휘둘려 왔던 것이 사실이다. 반면 지난 백 년 동안 치욕과 영광을 두루 경험하며 다져온 국민적 저력과 결의는 우리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부여해 주었다.

21세기 세계화된 국제경쟁 시대에는 국토, 인구, 군사력의 크기와 같은 이른바 하드파워보다도 광범위한 분야에서의 창의력, 즉 소프트파워의 중요성이 훨씬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큰 나라들 사이에서 주눅들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는 얼마나 반가운 시대변화란 말인가.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후손인 우리 국민의 창의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아니 보다 앞서갈 수 있다는 힘과 자신감의 원천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우리의 운명을 자율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힘은,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창의성은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자유로부터 나온다.

아무리 어려운 위기라도 국민의 선택에 의해 모인 동력은 그 힘이 배가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적 합의는 국민 간의 상호신뢰 없이는 결코 조성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지닌 가장 큰 취약점이며 국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허점이 바로 상호 신뢰의 부족으로 인한 갈등의 증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자유, 평화, 평등, 복지 등 민주적 기본가치를 지키려는 우리의 이웃임을 서로 믿는 자세로 출발해야 한다.

자유나 복지를 반대하는 국민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나만이 옳다는 독선을 씻어버리고 서로 탓하지 않으며 미워하지 않고, 규탄하지 않는 한국적 미덕이 시민문화로 정착되는 국민운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는 소득과 계층의 양극화, 청년실업과 일자리 창출문제 등 이미 우리 사회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매김돼 온 쟁점부터 신뢰를 바탕으로 해결의 방향을 잡아가야 하겠다.

세계사의 전환기적 진통이 수반한 한반도의 격동도 우리 하기에 따라서는 국가 발전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새해벽두에 가져본다.

그동안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면 이제는 마음가짐과 자세를 획기적으로 바꿔가야 할 때가 되었다. 모두의 창의력과 지혜가 결집된 개혁이 꼭 필요한 시점이다. 많은 국민이 걱정하면서도 불신하는 지금의 한국 정치와 사회의 혼란은 한두 사람의 지도자나 어떤 소수의 잘못보다는 헌정(憲政)의 제도적 결함, 특히 헌정문화가 뿌리내리지 못한 데서 말미암은 것이다.

선거의 해인 금년은 개혁의 내용과 결과를 중시하며 시대적 과제를 겸손한 자세로 풀어가면서 국민의 동참과 희생을 요구할 수 있는 공인(公人)들을 찾는 해가 되어야 하겠다.

우리 민족과 대한민국의 앞날은 통일이란 큰 목표와 남북관계란 어려운 과제를 밀어놓고는 설계할 수 없다. 더구나 세계적인 대전환의 고비에서 북한 지도자의 사망이 겹쳐진 지금이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 가능할 것인지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선택의 시간이다.

물론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결정의 당사자는 북한일 것이다.

남북한 두 체제가 공존공영하면서 통일을 향해 함께 전진하자는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 방안이 범국민적 합의로 채택되고,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며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을 선포하던 20년 전의 통일에 대한 희망의 불씨는 아직도 꺼지지 않았다. 그 희망의 시기를 가능케 했던 김일성 주석의 입장으로 회귀하는 북한의 용단을 한국인은 물론이려니와 지구촌 전체가 기다리고 있다.

새해에는 통합의 다이내믹스와 지도자들이 분열 세력들을 압도하는 드라마가 한반도를 비롯한 지구촌 곳곳에서 펼쳐지기를 기원한다.

이홍구 중앙일보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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