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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의 퇴장 “참 징~그럽게 오래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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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김종훈

‘검투사’가 물러났다.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이임식을 열고 본부장직을 내려놓았다.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된 지 4년4개월 만이다. 그는 지난 정권에서 유임한 유일한 장관급 공무원이었다. ‘대통령보다 오래 한 현직 최장수 고위 공직자’로 불리기도 했다. 재임 중 한-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과 인도·유럽연합(EU)·페루와의 FTA를 잇따라 발효시켰다. 그래도 그와 가장 인연이 깊은 것은 역시 한·미 FTA다. 2006년부터 한·미 FTA 수석 대표를 맡으며 협상을 주도했다. 그리고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에야 짐을 벗은 것이다.

 그는 이날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 중에 지난 4년여를 돌아보며 “참 징~그럽게 오래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미 FTA가 국회를 통과한 만큼 물러날 때가 됐다고 생각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했다. ‘징그럽다’고 말하는 대구 억양에 그가 겪었을 마음 고생이 묻어났다. 한·미 FTA 반대 여론이 본격화한 올해 하반기 그는 야당 의원들에게서 ‘매국노’ ‘이완용’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다. 인터넷에서도 한·미 FTA 반대 세력들에게 ‘을사5적’이라는 등의 모욕을 받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길고 험난한 시간이었다. 하루하루가 다 힘들었지만 2008년 쇠고기 파동 넘어갈 때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한·미 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그는 나름 새로운 시도도 했다. 11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트위터를 통해 인터뷰를 생중계한 것이다. 하지만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소통, 소통 하는데 인터넷에서의 소통에 인격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자기 주장과 남의 주장을 듣고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게 인격의 모습일 텐데 지금은 ‘대중에겐 인격 묻지 마라’는 식인 것 같다”는 것이다. FTA 효과를 둘러싸고 여전히 논란이 뜨거운 것과 관련해선 “우리 경제 구조에서 개방을 통해 성장 동력을 유지한다는 전략을 포기할 수 없고, 이미 추진한 FTA를 봐도 FTA 전략은 한국 경제에 확실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다만 추진 과정에서 생기는 부가가치가 국내 경제 주체에게 골고루 나눠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남아 있는 후배·동료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서 “우선은 며칠 쉬겠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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