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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번째 편지 〈외모에 대한 환상〉

중앙일보

입력

오랫동안 당신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즘 당신 모습이 자주 눈앞에 떠오릅니다. 어떤 때는 '그 모습'이 무척이나 간절해집니다.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말입니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모습은 오히려 희미해져 실루엣처럼 윤곽만 남다가 결국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하나의 존재라는 것이 그토록 간곡한 의미를 가진 것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다시 당신 모습을 찬찬히 떠올려봅니다. 당신은 그리 큰 키가 아닙니다. 처음에 보았을 땐 그렇게 완전(?)해 보이더니 이제는 조금씩 평범하게 느껴집니다. 콤플렉스 따위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줄 알았더니 그게 또 아니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당신은 이마가 잘 생긴 사람입니다. 옆에서 보면 잘 빗은 흰 사발처럼 둥그런 선이 아주 맵시 있게 눈썹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마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왼쪽 정수리 쪽에 세 바늘쯤 꿰맨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당신은 또 이가 매우 가지런하고 흰 편인데 언젠가 내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어려서 치열 교정을 했습니다. 남들보다 이빨이 두 개가 많아 뽑아버리느라고 말이죠."

그 또한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게 아니라도 당신은 어여쁜 부위(?)가 많은 사람입니다. 어깨선이 특별히 아름답고 손가락의 선도 매우 길고 아름답습니다. 손톱도 폭이 좁고 긴 편이어서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아도 분홍으로 아주 선명합니다. 허리도 분명 있는 편이고 머리칼도 탐스럽고 숱도 많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당신은 또 이럴 테지요.

"실은 뱃살 때문에 고민이에요. 하루에 오십 번씩 윗몸일으키기를 해도 좀처럼 들어가지 않아요. 이러다가는 급기야 배들레햄이 되고 말겠어요. 그 똥배라는 거 말이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결코 배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약간 볼룩한 배가 섹시해 보이는 법입니다.

내가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당신 몸의 콤플렉스는 다리가 좀 굵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다 발의 볼이 좀 넓은 편입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다는 겁니까? 메마른 다리보다는 차라리 약간 굵은 게 보기에 편하고 좋습니다. 전체적으로 그만하면 훌륭하다고 느낍니다. 피부가 남들보다 유독 희고 곱지 않습니까. 어떻게 골고루 다 최고일 수가 있겠습니까?

그 최고라는 것도 알고보면 허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가령 미스 유니버스나 미스 코리아 선발대회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가슴-허리-엉덩이의 황금분할 수치는 다름아닌 밀로의 조각 〈비너스〉의 치수인 것입니다. '만든 것'이란 얘깁니다. 거기다 꿰어 맞추려고 몸부림을 치는 여인들을 보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우선 그 수치나 균형은 우리와는 체형이 전혀 다른 서양인의 몸을 기준으로 한 것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미인의 기준은 시대나 민족마다 모두 다릅니다. 양귀비가 과연 오늘날에 태어났다면 미인으로 대접받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녀는 통통하다 못해 거의 '뚱뚱'에 가까운 작은 여자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르누아르의 그림에 나오는 체형을 가진 여자를 좋아합니다. 살이 좀 있어야만 여인처럼 느껴집니다. 사람의 살이란 더군다나 여인의 살이란 지극한 부드러움과 모성의 상징입니다.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해 피골이 상접한 여인을 보면 과연 왜 저러는 것인지 역시 안타깝습니다.

그런 나도 십대에서 이십대 초반까지는 깡마른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물론 외모만을 두고 하는 얘깁니다. 또 머리칼이 길고 좀 핼쑥한 얼굴에다 담배를 피우는 여자를 좋아했습니다. 지적이고 멋있어 보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거의 반대가 되었습니다. 담배와 술은 기호품에 불과하므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오직 자기 선택의 문제라고 아직도 생각하지만 굳이 말하라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쪽이 저로서는 조금 낫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키스라도 하게 되면 입 냄새가 없는 편이 아무래도 좋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이어트 얘기를 좀더 하겠습니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보기엔 알맞게 살이 올라 있는 여성인데 한 달 동안 음식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포도 주스만으로 4킬로그램을 감량한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나치게 다이어트에 열중하다 영양실조로 입원까지 하는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저 자신은 확실히 마른 편이어서 어떻게 하면 살이 찔까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밥을 잘 먹는 게 보약이라는 말을 들어 밥때마다 의식적으로 양을 조절하려 하지만 워낙에 타고난 입이 짧고 까다로워 좀처럼 양이 늘지 않습니다. 당연히 살이 찌지 않습니다. 말랐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그렇다고 어디가 특별히 아프다거나 좋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마음 먹기로 했습니다. 원래 타고난 자기 몸이 가장 완전하고 아름다운 것이니 학대하지 말고 소중히 여길 지어다. 다만 건강은 항상 유의해야 하느니라. 뭐 이렇게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가쁜해집니다. 또 남들도 그렇게 봐주는 것 같습니다. 한편 사실입니다.

체형의 집단적 일관성을 추구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 수많은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이유 중엔 다만 건강 때문이 아니라 분할과 수치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그 황홀(?)한 수치 기준이나 개념은 아까도 말했듯이 남의 것에 불과하고 또 텔레비전이나 잡지에 나오는 광고에 의식, 무의식적으로 억압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껏 상품을 팔기 위한 광고는 수많은 사람을 획일화시키는 폭력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에 매달리면서 억압을 받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사람의 외모는 저마다 다르게 마련입니다. 유전자 조작에 의해 태어난 복제 인간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이 갖고 태어난 몸을 가장 완전하고 아름답게 여겨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 그렇게 생각해 줄 사람은 오직 그리고 우선 자기자신밖에 없습니다. 자기 몸을 학대하거나 함량 미달로 업신여기는 순간 남들도 곧 그렇게 보고 맙니다.

사람에겐 또 외모만 있는 게 아닙니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뜨 삐아프는 키가 불과 150센티미터도 될까 말까한 아주 작은 여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여자를 미워하거나 '작은 여자'로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건강이 아름다움의 90%라는 걸 나 역시 조금 늦게 깨달았습니다. 가끔 밖에 나가 길에 다니고 있는 십대, 이십대 남녀들을 보면 바로 그 건강함 때문에 다 아름답게 보입니다. 제 나이를 사랑하며 살 줄 알아야 인생이 보다 풍부해지고 후회가 쌓이지 않듯 자기의 고유한 외모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아껴야만 역시 삶이 해피해지고 무한해지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나 혹은 내가 없으면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세계의 일체성도 내가 존재하지 않는 한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나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도 알고보면 자기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얼마쯤은 다 가지고 있게 마련입니다. 클라우디아 쉬퍼도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삶은 한편 콤플렉스를 아름답게 극복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사람이 다 아름다운 존재로 눈에 비칠 때 삶이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쯤이면 타인도 나처럼 중요하게 생각되고 또 자신도 어느 타인 못지 않게 고유하고 완전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어서 당신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이 가진 그 모든 고유함 때문에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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